2021 법무사 6월호
그래도삶은 계속된다 시 성승철 법무사(광주전남회) · 시인(전순천문인협회장, 현전남문인협회이사) 시간의 벼랑 같은 마을에 위태로운 나무 하나 서 있습니다 날래다는 화살나무의 용맹이 지키고 있습니다 마당가에선 함박꽃처럼 피다 멈춰버린 꿈들이 손을 흔듭니다 나무는 들를 때마다 반가운 양 더 기웁니다 가지 같은 지붕을 지나친 예의처럼 땅에 대고 있습니다 거기에 푸른 이슬 같은 아이들의 꿈 세우고 싶었지요 매매도장 못 받아 삼 남매 데리고 쫓겨난 여자의 사연도 이젠 무너진 대문처럼 녹이 슬었습니다 민들레와 담쟁이가 녹슨 운명에 맞서고 있습니다 당산나무부터 마을집들 고양이들의 눈도 그쪽을 향합니다 언젠가 닥칠 운명을 아는 게지요 불현듯 내게 속이 털리고 떠난 슬픔들과 주변을 맴도는 연민들이 겹쳐집니다 목이 메입니다 봄물이 오른 LP판 같은 벚나무의 이야기가 멈춰버린 우물에서 퍼올려지는 사연이 길고 무겁습니다 삶은 저리 곡절을 풀어가다가 막히면 방향 없이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시가 박히면 더 속도가 나는 모양입니다 이왕이면 해와 바람이 없는 쪽으로 기울었으면 좋겠습니다 좋다지만 날마다 밀어내는 횡포가 무섭습니다 늙은 감나무의 한결같은 응원은 고맙습니다 밖은 개벽의 꽃들이 활짝 피는 봄날인데요 왜 이리 잿빛으로 기우는 나무 하나가 시리게 박히는지요 빈 집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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