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9월호

어려서 아버지의 직업이 전도사라는 것이 불편했 다. 사택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겨울철이면 새벽 기도 를 마친 신도들이 우리가 자고 있는 방에 모여들어 이불 속으로 발을 쑥쑥 집어넣는 통에 발 냄새를 맡으며 자 는 척을 해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래도 늦은 밤까지 캐럴송이 울리는 눈 내리는 거 리로 심방을 다니며 교인들 집집마다 대문 앞에서 촛불 을 들고 찬송가를 합창했던, 그 풍금 소리와도 같은 흐 려진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 따뜻한 추억으로 남 았다. 겁이 많던 나는 죄를 지으면 죽고 나서 불지옥에 떨 어진다고 해서 하느님께 제발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눈 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 는 불지옥도 참작할 만한 사정의 하나로 여길 만큼의 생 활인이 되고 말았다. 아내가이단교회에빠졌다며가출한남편의이혼소송 2019. 5. 경 젊은 여성 두 분이 내 사무소를 찾았다. 한 분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고, 다른 한 분은 내게 눈 인사를 보내며 반가워했다. 그 다른 한 분은 2015. 9.경 남편이 자신의 종교생활을 반대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나가 이혼소송을 제기해 왔다며 소장 부본을 들고 찾아온 분이었다. 그때 나는 이혼하고 분식집이라도 내서 혼자 살겠 다는 말이 하도 철없이 들려 소송에 대응하지 말고, 접 근금지가처분을 신청하도록 했었다. 그리고 법원에서 그 가처분이 인용되자, 남편이 소송을 포기하고 그해 12월, 내 사무소에서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격랑에 내몰 렸던 위기의 가정을 구한 좋은 선례를 남긴 분이었다. 당시에도 남편은 아내가 ‘새로운 하늘과 땅’이라고 하는 이단교회에 빠졌다며 격노했고, 아내 역시 잘 알지 도 못하면서 편견으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모욕했다 고 맞서 반발했는데, 법원의 강제조치로 몇 달가량 헤어 져 지내는 동안 서로에 대한 미움은 그리움으로, 서운함 은 걱정으로 바뀐 듯, 두 부부를 갈라놓은 접근금지명 령은 치워야 할 장애물이 되었고, 서로를 갈망하는 깊은 애정은 하늘도 막아서기에 역부족인 듯했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합의서 문구 손질을 위해 이것 저것 꼼꼼히 묻는 내 눈치를 피해 서로 슬쩍슬쩍 주고받 는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날이 재회한 첫날이라 는 것과 애들이 학교 갔다 돌아오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서 끝내고 어디론가 가서 그동안 못 한 밀린 숙제 같은 것을 빨리 해야 하는 것만 같아 보 여, 아름다운 재촉을 받았던 기억으로 잔잔한 미소가 번 진다. 그런데 오늘 내 앞에 망령처럼 마주 앉은 의뢰인은 ‘새로운하늘과땅’이라는 교회에다닌것을알게된남편은 폭력을행사하고집을나가이혼소송을제기했다. 남편은생활비일체를끊는방식으로 아내의종교적신념을굴복시키고자했으나, 아내는남편의이같은양자택일요구를 주께서주신시련이자연단으로받아들였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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