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9월호
불행을 각오한 단호한 눈빛이었고, 등 뒤에서는 무거운 고독이어깨너머로기록을넘겨주고있었다. 차갑고도무 거운 입을 떼기 시작한 의뢰인 옆에서 자신의 경험처럼 잘될 것이라고 거드는, 한때 이글거리는 눈빛을 가졌던 그다른분의표정도얼마가지못하고이내굳어졌다. 이 의뢰인 역시 ‘새로운 하늘과 땅’이라는 교회에 다닌 것을 알게 된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나가 그길로 변호사를 선임해 이혼소송을 제기해 온 것은 전 과 같은데, 전보다 어려운 문제는 의뢰인의 남편이 보험 사 중견간부로서 법리에 밝고 경제권을 가지고 있던 터 라 당장에 생활비가 중단되었고, 재산분할의 규모도 상 당히 컸다. 의뢰인은 간간이 학습지 교사를 하기는 했지만 13 년의 결혼생활 기간 동안 거의 전업주부였다시피 해서 어린 자녀들을 건사하기 위해 당장 일선에 뛰어들 깜냥 은 안 되었다. 남편은 자신의 따뜻한 그늘 아래 온실 속 의 화초처럼 안락한 생활만 해온 아내가 일순간 맞닥뜨 릴 냉혹한 경제적 어려움을 통해 아내의 종교적 신념을 굴복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남편의 이 같은 잔인 한 양자택일 요구에 자신의 신앙이 성장함에 따라 시험 에 들 시기가 온 것이고, 이를 주께서 주신 시련이자 연 단으로 받아들이는 의뢰인의 태도였다. 한숨도 쉬지 않 았고, 걱정도 하지 않았다.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었 다. 함께 온 다른 분은 순간 향단이가 된 듯 멋쩍은 웃음 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가사이좋게지냈으면좋겠어요” 나는 의뢰인에게 남편이 집을 나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녀들로부터 진술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남편 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으나 내심 의뢰인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딸이 연필로 꾹꾹 눌러 적 은 ‘판사님께 보내는 편지’에는 어떤 강심장도 녹일 만한 사랑의 힘이 녹아있었다. “판사님 저는 다 봤으니깐 제 말은 믿으셔도 됩니 다.”라고 시작되는 상황 묘사는 적나라했고, “저희 가족 이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고, 즐겁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는 것을 판사님께서 도와주세요. 그 리고 다시는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도록 해주세요. 판사 님, 저는 아빠와 함께했던 추억도 그립고, 엄마와 온 가 족이 함께 게임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했던 것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판사님! 꼭 해결해 주시고, 나중에 시간 될 때 만나서 얘기해 봐요. 부탁드려요.”라고 분기 탱천한 글을 맺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은 누나처럼 상세한 상황 설명은 없고,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당찬 글씨로 적었다. “아빠, 엄마가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판사님 이 꼭 도와주세요! 저희 가족이 함께 살게 해주세요. 제 발요!” 나는 마음속으로 답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 앞에 불행의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는 것 같구나.’ 나는 의뢰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부는 이 혼할 수 있지만, 자녀들은 부모의 선택에 운명이 좌우되 는 최대의 피해자들이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가정의 평화를 해치고, 불행의 수렁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면 어른들은 자녀들 앞에 돌 이키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고, 하느님과 예수님을 욕보 이는 것이라고. 그리고 같은 기독교인데 교회끼리 서로 ‘우리가 더 세게 믿게 해 주겠다’는 식의 목회자들의 영업에 걸려든 것이라며, 남편과 의뢰인을 싸잡아 나무랐다. 그러나 의뢰인은 “다 같은 하느님 아닙니까”라고 물타기를 하는 내 마무리에 전혀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같은 의뢰인의 강한 신앙심은 소송 내 내 걸림돌이 되었다. 16 법으로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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