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9월호
밝은빛이드러난다. 하늘은짙은청색이다. 월북한남편의작품끝까지지켜낸아내 사실 이 작품은 여인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데 왜 화가는 여인의 배경으로 풍경을 넣었을까? 여 인이 살던 고향을 형상화한 것일까, 아니면 여인의 심정을 상징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인이 처 한 어두운 현실을 암시한 것일까? 그렇다면 배경은 해방기였던 당시의 복잡한 현 실을 상징화한 셈이 된다. 그 앞에 봄을 닮은 여인이 있다. 불길함보다는 밝은 이미지다. 이쾌대는 풋풋한 여인을 앞세워 희망을 노래하 고자 한 것 같다. 더욱이 여인은 가만히 서 있는 자 세가 아니다. 암울함 속에서도 앞을 향해 걷고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그림 속의 여인은 장차 홀 로 남게 될 부인의 운명과 오버랩된다. 6·25전쟁이 발발했지만 이쾌대는 피난길에 오를 수 없었다. 부인 은 만삭이었고 노모까지 돌봐야 했다. 그렇게 서울에 남았다가 좌익이 원하는 그림 제작에 차출된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서울이 수 복되고, 그는 좌익활동 혐의로 거제도에 수용된 후 우여곡절 끝에 월북한다. 이쾌대는 거제수용소에서 보낸 편지에서 자신 의 그림 도구 등을 팔아 아이들을 굶기지 말고 먹이 라고 당부한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부인은 ‘월북가족’으로 낙인찍힌 채, 네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작품과 유품을 지켜냈다. 1988년, 월북화가 해금조치가 이뤄지자 이쾌대의 수많은 걸 작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남편을 향한 사랑으로, 반공의 감시망 속에서 작품을 지켜낸 것이다. 「봄처녀」 속 여인은 어둠을 헤치고 나서는 중이 다. 부인 유갑봉이 감시 속에서도 ‘화가 이쾌대’를 살 려냈듯이, 여인은 저고리 색깔만큼이나 붉은 장밋빛 미래를 알려주고 있다. 치맛자락이 날린다. 희망의 바람이 부는 중이다. 이쾌대, 「봄처녀」, 캔버스에유채, 45.7×38.3cm, 1940년대말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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