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11월호

오래된사건기록을정리하면서손때묻은두툼한기 록을 꺼내 들고 갑자기 전화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몇 번의 신호 끝에 의심스러운 듯 낮은목소리로전화를받는한사내의목소리가들려왔다. 내가 “OOO님이신가요? 이성진 법무사입니다”라 고 신분을 밝히자, “그런데요, 누구…시라고요?” 이미 알아들었으면서 오래된 기억의 비탈을 가파르게 내려가 는 듯 재차 확인하고자 되묻고 있었다. 그러고는 웅성거 리는 실내를 급하게 빠져나와 이성진 법무사는 자기도 잘 안다는 듯 반갑게 맞이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럼요, 잘 지 내죠.” 목소리는 한결 밝아졌고 커졌다. “사모님도 건강 하시죠?”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도장은 언제 찾아갈 거 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잠깐 지난 얘기를 했다. 애들이 둘이라고 했는데 다 커서 성인이 되었고, 자기도 어느새 50이 되었단다. 나는 “그럼 그때 저하고 또래였겠네요?” 라고 반문하자, “아마 그럴 겁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사모님께도 전해주세요, 법무사님이 응원하고 있다 고요.” 그때 내가 애어른이었는지, 아니면 사건의 내용에 비추어 의뢰인을 어리게 봤는지, 내 기억엔 그 사내의 첫 인상은깡마르고키가껑충한젊은청년으로만남아있다. 마트계산원아내의소액횡령, CCTV에잡혀발각 이 의뢰인을 만난 건 개업하고 2년이 채 되지 않 던 신참 법무사 때였다. 2012.2월경 지급명령을 받았다 며 찾아온 의뢰인은 혹독한 추위를 겪고 오그라진 낙엽 처럼 황망한 모습으로 한숨과도 같은 법원 봉투를 조심 스레 내려놓았다. 손등은 거칠게 터 있었고 손끝은 피가 통하지 않는 듯 건조했다. 채권자의 신청 원인을 빠르게 읽어보고는 해명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눈으로 의뢰인을 올려다보는 내게, 그는 몇 번이고 마른 손으로 얼굴을 훔치더니 지난 몇 달간의 악몽 같은 얘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탁송기사로, 아내는 마트 계산원으로 밤낮 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해도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 고, 세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 대출이자를 갚아 나가는 데 여력이 없던 처지에 아내가 마트 계산대에서 1~2만 원 정도씩 손을 댄 것이 화근이었다. 아내는 퇴근해서 반찬이라도 사 들고 들어가고 싶 은 욕심에 현금결제 하는 손님 돈을 조금씩 빼내서 주머 니에 넣었다고 하는데, 새가슴으로 담은 돈은 적발되기 직전까지 약 6개월간 40만 원 정도였다. 이 같은 범행은 마트 사장이 몰래 설치한 CCTV에 아내가 계산대 계산기기의 ‘직전 취소’ 키를 누르고 현 금을 빼돌리는 장면이 찍히면서 적발되었다. 마트 사장은 아내를 경찰에 상습절도로 신고하 는 것은 물론, 남편과 가족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2011.10.25. “하루 30만 원씩 한 달 26일 기준, 월 780만 원씩 계산한 6개월 치 4,680만 원을 2회에 걸쳐 분할 변 제한다”라는 내용의 공증을 받은 후, 그 달 치 임금과 5 년간 퇴직금을 모두 포기시키고 아내를 해고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어 몸이 아파 일을 쉰다며 며칠을 드러누웠는데 급한 불을 끄느라 공증을 서 주기는 했지만, 도저히 혼자 힘 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액이라 며칠을 앓다가 마트 사 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해 보기로 했다. 마트계산대에서 1~2만원정도씩 6개월간 40만원정도손을댄것이화근이었다. 아내는 CCTV에현금을빼돌리는 장면이찍히면서적발되었다. 마트사장은아내를상습절도로신고하고, “4,680만원을 2회에걸쳐분할변제한다”라는 공증을받은후, 그달치임금과 5년간퇴직금을모두포기시키고 아내를해고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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