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11월호

슬기로운문화생활 산이 꽃잎처럼 겹겹이 싸여 천지를 덮었다. 빼곡하 게 솟은 봉우리들이 죽순처럼 얼굴을 내밀며 폼을 잡고 있다. 산의 어울림이 환상적이다. 밀양 얼음골에서 케이 블카를 타고 오른 천황산 전망대에서 본 풍경이다. 가히 영남의 알프스라 할만하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을 바라보니, 유영국(1916~2002)의 작품 「산」(1974)을 보는 듯하다. 삼각형 모양의 산이 싱그럽게 솟아 있다. 순수한기하학적조형요소, 우리추상미술의선구자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울창한 숲으로 조 성된 산과 드넓은 바다를 품은 울진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서울의 제2고보(현 경 복중고) 재학 중 졸업 1년을 남겨두고, 열아홉 살(1935) 에 일본으로 건너가 김병기(1916~), 문학수(1916~1988), 이중섭(1917~1956) 등을 배출한 도쿄 문화학원(文化學 院) 미술과에 입학한다. 1937년, 제1회 자유미술가협회전과 제7회 독립미술 가협회전에 입상하고, 이듬해에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 전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추상미술로 입지를 다진다. 1943년 귀국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업에 종사 하며 가정을 꾸렸고, 194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로 초빙된다. 작품 활동도 활발하여 김환기(1913~1974), 이 규상(1918~1967) 등과 순수를 표방한 미술단체인 ‘신사 실파’를 결성한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며 고향 울진으로 피난 을 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서울로 상경해 자신의 추상미술 작업에 전력을 쏟는다. 추상미술은 소재를 묘 사하는 대신 점·선·면·색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형식이다. 화가이자 미술비평가 정규(1923~1971)는 김환기가 자연주의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추상에 이르렀다면, 유영국은 처음부터 순수한 기하학적 조형 요소로 작품 구성을 시도한 탓에 유영국을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 구자로 꼽았다. 미술평론가 이일(1932~1997)은 “유영국 씨는 자연 적인 형태를 하나의 기하학적 패턴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산이라는 모티브를 순전한 조형언어, 즉 순수형태로 순 화시켜 이들 기본적 형태를 통한 지적 구성미를 자아내 고 있다”고 평했다. 유영국은 그룹전을 결성하여 활발하게 추상화에 매진했다. 일반인들의 추상화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낮 았지만, 1980년대 비로소 추상화가 조명을 받게 되면서 그의 작품도 한결 순화된 스타일로 변했다. 순도 높은 색 채와부드러운화면처리가자연스러운양상으로흘렀다. 유영국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내가 대상으로 한 것은 자연이었고, 그것을 탐구해온 형태는 비구상을 바 탕으로 한, 즉 추상이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물 로서의 자연이 아니고 선이나 면이나 색채, 그리고 그런 선과 면과 색채들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로서의 자 연”이라고 말했다. 고향에서 본 산과 바다는 강렬한 색 채를 입고 작품으로 태어났다. 그림과눈을 맞출때 지금이순간, 바로이그림이야기 화면을 압도하는 원근의녹색봉우리, 큰 울림 유영국의 「산」 김남희 화가 · 『옛 그림에기대다』 저자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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