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법무사 1월호

가족에서지역사회, 사회로확장된기부의역사 현재에 안주하거나 정체되어 있지 않고, 항상 새로 운 흐름을 읽으며 변화하려는 얼리어답터의 정신은 법 무사 업에서도 남다른 성취를 안겨주지 않았을까? 궁금 해졌다. “1971년에 법원 공무원을 퇴직하고 개업하면서 법 무사로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조사를 해보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처의 발굴과 관리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항상 남보다 먼저 거래처를 확보하 려 노력했고, 확보된 거래처는 제가 직접 관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용 사무원의 수에 제한이 없던 때에는 13 명의 사무원을 둔 대형 사무소로까지 발전하기도 했고, 1990년대부터는 합동사무소를 운영하기도 했지요.” 70, 8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치며 한창 의욕적으 로 일할 때는, 일 년에 거의 1만 건에 달하는 사건을 처 리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는 성공한 법무사들 중에서도 성공한 법무사였다. 그는 이런 성공을 통해 자산이 쌓이 자 조금씩 분배와 환원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첫 대상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무원들과 자 녀들이었다. “당시 사무원들에게는 같은 지역 법무사 사무소와 비교해 최상의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일 년에 최소 3번 의 보너스를 지급했으니까요. 그렇게 먼저 직원들의 처 우를 개선해 주고 난 후에는 수입이 생기면 조금씩 아이 들에게 증여하면서 자산을 분배했습니다.” 그러다 60세 환갑을 맞았던 1991년, 그는 가족과 주변에 대한 소소한 기부행위들을 넘어 본격적인 사회 적 환원의 계기를 맞게 된다. 다름 아닌 그의 고향마을 에 낙후된 가로등을 교체해주거나 편의시설을 설치해 주는 등 기부를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기부로 그는 고 향에서 크게 환대를 받았고, 여러 고향 지인들부터 칭찬 과 평가를 받아 기분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기부의 맛을 알았다고 할까. 그때부터 그는 10년 주 기로 기부를 실천하기로 결심하고, 70세가 되던 2001년 에는 고향마을에 큰 정자를 설치해 주었다. 그러나 80세 가 되던 2011년에는 고향이 행정수도로 변하며 많은 것 들이 변모해 기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팔순을 맞아 그동안 제가 해오던 일상의 법 무사 업무들을 정리했습니다. 팔순이 가까워지면서 스 스로의 업무처리에 대해 의심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더 이상 일반적인 업무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모 든 거래처를 동료들에게 넘기고, 가지고 있던 자료들도 정리했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간간이 들어오는 지인 들의 법무 상담만 하고 있습니다.” 사인증여의장점, 유류분청구권소멸시효 1년 지난해 구순을 맞이하며 그는 또다시 기부계획을 세웠다. 이제는 인생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에 신중하게 기부처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최종 카 이스트 AI대학원을 선정하였다. “기부에 형식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금전뿐 아니 라 자원봉사, 지식나눔, 작은 선행에 이르기까지 타인을 돕는 어떤 행동도 기부가 될 수 있어요. 다만, 저는 이번 기부가 제 인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해 부동산과 금전 기 부를 선택했고, 사인증여 형식이 제가 처한 상황에서 가 장 합리적이라 판단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의 이번의 기부를 두고 주변에서 유류분 문제 등 여러 우려의 말을 들었지만, 자녀들에 대해서는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증여를 통해 자산분배를 해주 었고, 제 뜻을 충분히 설명해 오히려 아이들이 이번 기 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유언은 유 언집행자 문제, 유증은 유류분 청구 등 문제가 있지만, 사인증여는 유류분청구권의 소멸시효가 1년이라는 점 에서 꽤 괜찮은 기부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변 에 많이 권유하고 있지요.”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힘 있는 목소리와 곧은 자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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