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법무사 3월호

2080 신인치고는 무척 괜찮은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데뷔를 위한 투자액이 무려 30억 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만족스러운 수 치는 아니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No. 1」에 부여 되는 의미는 각별하다. 보아는 2001년 5월 본격 적으로 일본에 진출한 뒤 약 10개월 만에 한국 과 일본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활약이 미흡 했던 그는 「No. 1」으로 비로소 모국에서도 으뜸 가는 위치에 섰다. 빈틈없는 기획과 이를 바탕으 로 한 체계적인 훈련이 맺은 결실이었다. 「No. 1」 의 히트에 힘입어 보아는 한국과 일본에서 성공 을 이어가게 됐다. K-팝의외국시장진출분기점만들어 아시아를 누비는 꿈을 이뤄 준 「No. 1」은 경쾌함과 서정미를 겸비해 큰 사랑을 받았다. 노 래는 당시 서구 대중음악에서 유행하던 댄스 팝 형식을 채택해 세련된 흥겨움을 발산했다. 그와 함께 댄스곡임에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소녀 의 애달픈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촉 촉한 감수성을 한껏 드러냈다. 역동적인 리듬과 은은한 코러스는 서로 대 비되는 매력으로 곡을 한층 멋지게 만들었다. 또한 보아는 시원스럽게 춤을 추는 중에도 조금 의 흔들림 없이 깔끔하게 라이브로 무대를 소화 했다. 사람들의 눈길은 보아에게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노래의 히트는 우리 음악 산업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이후 데뷔하는 가수들의 연령이 부쩍 어려진 것이 그중 하나다. 비슷한 또래로 동질 감을 형성해 음반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10대를 수월하게 공략할 수 있고, 그 이상 연령대에서 music 도 귀여움과 풋풋함을 앞세워 두루 호감을 살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할수록 활동 기간도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되니 가수와 제작자 모두 에게 득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대한 변화는 ‘케이팝’(Kpop)이라고 명명된 우리 대중음악이 나라 바깥 에서도 힘을 낸 것이다. 새천년을 전후로 여러 가수가 타이완과 중국에서 공연을 열며 외국 시 장 진출을 확산해 갔다. 하지만 대부분 한시적인 활동에 그쳤다. 반면, 보아는 음반 출시와 공연을 지금까지 도 이어오고 있다. 현지의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 해 언어의 벽을 허물었고,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토대로 그곳 대중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선보인 덕분이다. 이후 다수의 아이돌 가수가 이런 시 스템으로 속속 외국에 진출했다. 「No. 1」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일본 에 독점 중계하는 TBS 방송국의 테마곡으로도 사용돼 더 많은 이에게 보아를 알렸다. 「No. 1」은 이 같은 히트 외에 가수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 꾸는 기폭제로서, 케이팝이 외국 시장 진출에 적 극성을띠는분기점으로서중요한역할을했다. 보아 개인에게도 「No. 1」은 당연히 특별하 다. 이 노래가 ‘아시아의 별’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는 데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세대유전 2080 명곡 슬기로운문화생활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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