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법무사 4월호

문화路, 쉼표 했다). 당시 집으로 가져온 2절지는 2장이었는데 한 장은 벽보를 만들고, 남은 한 장은 누이동생의 학 습장 만드는 데 썼다. 이런 사실을 감쪽같이 몰랐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이 경찰서로 연행되어 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이웃 친구의 아버지에게 달려가 사정 이야기를 했다. 당시 아버지는 객지에서 공무원으로 근 무하고 있어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당시 여수시 반공청년단장으로 근 무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아들에게 저간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경찰서로 찾아왔다. 친구 아버 지는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다른 방으로 끌고 가더니 “절대로 네가 한 짓이 아니라고 잡아떼어야 한 다.”고 이르고는 경찰 간부와 담당 형사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불온한글, 경찰수사의오류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조사실에서 조사관의 신문이 시작되었다. 친구 아버지가 부탁을 해 놓 은 때문인지 담당 조사관의 신문 태도가 부드럽고 친절했다. 조사관은 노트를 건네면서 지난 이틀간 나의 행적을 빠짐없이 소상히 적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친구 아버지가 일러주신 대로 문제의 벽보를 써서 붙인 일만을 빼고 모든 행적을 다 적었다. 나중에 안 바로는 하교 후 나와 함께 과제물을 검사한 학우들이 전부(몇 명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는데, 좀 거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어떻게 우리를 연 행하게 된 것일까. 문제의 벽보를 수거하여 이면을 보니 무슨 그래프 같은 것이 그려져 있어 수거된 벽보 이면들을 모아 짝을 맞춰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학급의 수학 과제물이라는 출처를 알아냈고, 과제물 검사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집 으로 가져간 종이를 전부 경찰서로 가지고 오라고 해서 조사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나도 동생에게 만들어준 학습장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 학교 과제물 이면에 불온한 글을 써서 벽에다 붙인 것일까? 당시는 전시 중인 때라 경찰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린 학생 뒤에 숨어 조종한 불온세력을 찾기 위해 철저히 수 사를 하고자 했다. 밤이 되자 경찰서로 담임선생님이 찾아와 면회를 했다. 선생님은 걱정하는 말을 하면서도 속으 로는 ‘너의 짓이지’ 하는 것 같았다. 경찰서 조사실에서는 옆방의 소리가 웅성웅성 들렸는데, 조사관 을 위시한 경찰 간부들이 모여 무슨 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날 밤을 꼬박 경찰서에서 지낸 후 혐의점이 없어 새벽녘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고, 아 침에 등교를 했다. 아마도 친구 아버지의 다짐이 없었더라면 마음 약한 나는 조사관의 신문에 사실대 로 모든 것을 진술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경찰에서는 과제물 종이의 총 매수를 확인하지 않은 오류를 범했다. 며칠 후 공휴일에 지방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어머니로부터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불러 종아리를 걷어 올리라 하시더니 사 정없이 매질을 하였다. 그래도 나는 종아리가 아픈 줄을 몰랐다. 슬기로운문화생활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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