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법무사 7월호

지만, 오늘만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마음 을 비우고 소망도 기원해 보자는 다짐으로 언덕길을 오 른다. 마애석불 앞에서 소망을 기원하며 보문사 경내로 들어서니 번듯한 가람이 중생을 압 도한다. 경내 좌측으로 부처님 열반 당시의 모습을 조각 한 신장 10m의 와불상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오백나 한’ 불사가 있다. 보문사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윤장대와 석실 나 한전이다. 윤장대는 안에 불경이 들어 있는데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 는 곳이다. 석실 나한전은 서기 635년 회정대사가 창건했 다고 전해오는 석굴이다. 석실 바로 위에는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에 는 대웅전(지금은 ‘극락보전’)이 있는데, 주 가람인 대웅전 은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다포계 건물이다. 대웅 전 안에는 관음보살상을 포함한 3,000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옆 계단을 따라 약 15분 정도 오르면, 낙가 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 마애석불 관음 좌상이 있다. 눈썹 바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108계단을 지나 모두 418계단 을 올라야 한다. 힘들게 계단을 세며 오르면, 마침내 암벽에 높이 약 10m, 폭 약 3.3m 크기로 조각되어 있는 마애석불 좌상 을 친전할 수 있다. 석불의 형상은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있으며, 두 손에 정병을 들고 연좌 대좌를 한 모습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해를 바 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시 의 집과 빌딩들, 그 속에서 아웅다웅 다투며 사는 수많은 사람들. 문득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런 곳에서 살 수 없 을까, 나 홀로 피안에 온 듯 착각에 빠져 보지만, 수십 년 세속에 찌든 내가 과연 지금까지의 나를 몰아내고 새로 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현실은 가혹할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생활에 만족해야 함을 느끼며, 작은 소망들을 담기 위해 마애석불 앞 한쪽에 자리하고 앉아 미리 준비해온 소망들을 집사람과 함께 하나하나 빌어본다. 소망이란 가장 좋은 일에 대한 기대를 말하는 데, 성경에서는 헬라 문학에서처럼 단순한 기대나 갈망 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를 두고 소망의 하나님(롬 15:13)께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서해바다와 낙조,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길 이곳 보문사에서 앞으로 가장 좋은 일에 대한 기대 를 소망했으니 왠지 모든 것이 잘 풀릴 것만 같다. 이제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올라올 때 못 본 꽃을 내려갈 때 보았네”라는 시처럼 올라오면서 보지 못했던 서해바다의 온갖 풍경이 내려가는 길에서는 뚜렷하게 다가온다. 역시 세상사는 바라보는 시선과 시야에 따라 달라 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잠시 한쪽 계단에서 쉬어가며 내 안에 있는 나를 불러내 본다. 무슨 거창한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저 지나간 추억이나 아쉬웠던 일, 가정이나 직장에서 기 억나는 일들을 반추해 보는 것이다. ‘그때 그것을 해버릴 걸…’,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지난 일들을 나 자신에게 되묻다 보면 후회와 만족 속에서 내면 깊숙 이 잠들어 있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참을 되묻고 되묻다 일어서니 어느덧 경내를 벗어 나 일주문 밖 주차장이다.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 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욕망은 분수 밖 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하나가 필요 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 나마저도 잃게 된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 무소유 의 의미를 되새기며 석모대교를 벗어나니 어느덧 붉은 노을이 서해안을 물들이고 있다.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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