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법무사 9월호

2016년도 6월 말경, 남루한 차림을 한 초로의 여성 한 분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자신을 60대 중반이라 소 개했지만, 얼굴에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깊은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제 출생연도가 1951년생인데, 가 족관계등록부에 1953년생으로 등재돼 있다면서, 자신의 사건을 꼭 좀 해결해 달라며 사연을 털어놓았다. 6·25전사자의딸인데, 보훈처가유족등록을거부합니다 의뢰인은 충남 서산에서 1951년 7월 태어났다. 그 녀의 부모님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경 혼례 를 올리고, 아버지(父)의 본적지인 충남 서산시 ○○동 ○○○번지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 그 이듬해 의뢰인을 낳았다. 당시 1927년생으로 젊은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1952 년 6월 징집되어 군에 입대했고, 안타깝게도 1953.6.23. 전사했다. 그로 인해 부모님은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의뢰인의 어머니는 그 이듬해 재혼해 집을 떠났고, 이후 생모와는서로연락처도모른채살아왔다고한다. 그렇게 부모 모두 곁을 떠나 혼자가 된 의뢰인은 친 가에서 조부와 숙부, 고모들의 보살핌 속에 살았지만, 부 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초등학교 입학도 늦어지고, 출 생신고도 중학교 입학 무렵인 1968년 3월에서야 겨우 했 을정도로불우한어린시절과학창생활을보내야했다. 고교 졸업 후 일찍 독립한 의뢰인은 서울로 와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사고무친한 서울에서 여성 혼 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아슬아슬한 삶의 여정을 겪어야 했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두었지만, 의뢰인은 지금까지도 허드렛일과 미화 업무로 연명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그녀의 이런 삶에 조그만 희망이 생긴 것은 우연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지인들에게 신세 타령을 했 는데, 누군가 “아버지가 국군으로 6·25 때 전사했으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나라에서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 다”고 알려준 것이다. 의뢰인은 그길로 국가보훈처에 문의했는데, 지금 상태로는 유족 등록이 어렵다는 담당자의 답변을 들었 다. 이후 몇 번의 문의에도 대답은 똑같았다고 한다. 의 뢰인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삶의 모 든 고난이 아버지의 전사로 인해 시작된 것 아닌가. 의뢰인은 어떻게든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아야겠다 고 결심했다. 그리고 차일피일 미루던 그 결심을, 오늘 드 디어 큰맘 먹고 해결하기 위해 필자의 사무소를 찾은 것 이었다. “법무사님, 제 평생의 한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 지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했고, 어머니는 재혼해 떠나면서 지금까지 불우한 삶을 살았는데, 다른 사람은 다 받는 국가의 혜택마저도 저는 왜 받을 수 없단 말인 가요?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국가유공자 자녀로 등재가 안 된다는 것인지 너무 억울합니다.” 의뢰인은 어눌한 목소리로 하소연하며 국가와 사 회를 향한 원망 섞인 말까지 쏟아냈다. 나는 그녀의 억 울한 마음과 딱한 사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동족상 잔의 전쟁으로 인한 참혹하고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국 가’라는 공동체의 존립과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 가의 희생이 따라야만 했던 시기였다. 의뢰인의 아버지와 같이 의무적으로 희생당한 분 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 존립과 번 영,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후대의 사람들이 그 희생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 진정한 보훈의 시작이 고, 어떻게든 그들의 유족을 찾아내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이 앞으로도 나라를 위한 헌신과 봉사의 정신을 이어 가는 길일 것이다. 나는 의뢰인이 지금부터라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계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이 사건을 꼭 해결 해 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다. 11 열혈법무사의민생사건부 법으로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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