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연 법무사(서울중앙회) 오래전 이야기다. 1970년대 중반, 30대 젊은 청년이 었던 나는 법원행정처 시설과에서 주사로 두 번째 근무 를 하고 있었다. 당시 내 자리 오른쪽에는 나보다 두 살인 가 많은 K 서기가 내 일을 거들며 함께 일하고 있었다. K는 법원에 오기 전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입담이 좋아 그 일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을 때면, 나 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K에게 승진 발령이 났다. 우리 과에서 는 나와 K를 포함해 담당관 등 상급자 두 명이 길 건너편 화식(일식) 집에서 승진 축하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었다. 그날 K는 과음을 했던 모양이다. 회식을 마치고, 함께 삼성 생명 건물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K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것이다. 당황한 나는 K를 흔들어 깨우며 다시 일으키려 했 지만, 술에 취해 축 늘어진 K를 내 힘으로 일으키기는 역 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를 지나가는 방범대원에게 도움을 청해 둘이서 K를 부축해 가까운 여관으로 데리 고 갔다. 나는 여관에 그를 눕혀놓고 나오려 했지만, 여관주 인은 취객을 홀로 묵게 할 수는 없다며, 내가 함께 숙박 하지 않을 거면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 는가. K의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휴대폰은커녕 전화기 있는 집조차 귀한 시절이었으니 나는 꼼짝없이 통금 해 제 때까지 K와 함께 있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술에 취한 K는 방에 눕히자마자 잠에 녹아떨어졌 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옆에서 뜬눈으로 말똥말똥 밤을 새우고 있었는데, 얼마 후 K가 바스스 일어나더니 화장 실에 가겠다고 비틀거리며 방문을 나서는 것이다(그때는 여관도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저러다 쓰러지지 싶어 K를 따라나섰는데, 도착한 곳은 화장실이 아니라 목욕탕이었다. 여기는 화장실이 아 니라고 말할 새도 없이 K는 옷을 내리더니 소변을 보았 다. 그러고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큰일까지 연거푸 치 르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 벌어진 일에 망연자실했지만, 거의 반사적으 로 뒤처리를 하고 나는 K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눕혔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4시, 통금이 해제되 었다. K를 흔들어 깨우니 거슴츠레 눈을 뜨기에 나는 이 제 집에 간다고 작별을 하고, 쌍문동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말없이 외박한 적이 없던 사 람이 갑자기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자 집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밤새 걱정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 다. 그러던 차에 내가 나타났으니 단단히 오해를 했고, 나 는 지난 밤의 사정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침에 출근하자 K는 나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 다. 이후로도 그는 그날의 일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 다. ‘미안하게 되었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가. 취중 일이라 전연 기억이 없나 보다 치부하다가도 서운한 건 어 쩔 수 없었다. 내 평생 그리 난감한 적은 처음이었는데…. 그 K가 몇 년 후 세상을 떠났다. 문화路, 쉼표 법무사가 쓰는 수필과 시 첫 외박의 기억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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