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법무사 9월호

서세연 법무사(서울중앙회) 오래전 이야기다. 1970년대 중반, 30대 젊은 청년이 었던 나는 법원행정처 시설과에서 주사로 두 번째 근무 를하고있었다. 당시내자리오른쪽에는나보다두살인 가많은 K 서기가내일을거들며함께일하고있었다. K는 법원에 오기 전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입담이 좋아 그 일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을 때면, 나 는시간가는줄모르고재밌게듣곤했다. 그러던어느날K에게승진발령이났다. 우리과에서 는 나와 K를 포함해 담당관 등 상급자 두 명이 길 건너편 화식(일식) 집에서 승진 축하주를 마시며 저녁을 먹었다. 그날 K는과음을했던모양이다. 회식을마치고, 함께삼성 생명 건물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K가몸을가누지못하고길바닥에드러누워버린것이다. 당황한 나는 K를 흔들어 깨우며 다시 일으키려 했 지만, 술에 취해 축 늘어진 K를 내 힘으로 일으키기는 역 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를 지나가는 방범대원에게 도움을 청해 둘이서 K를 부축해 가까운 여관으로 데리 고갔다. 나는 여관에 그를 눕혀놓고 나오려 했지만, 여관주 인은 취객을 홀로 묵게 할 수는 없다며, 내가 함께 숙박 하지 않을 거면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 는가. K의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휴대폰은커녕 전화기 있는 집조차 귀한 시절이었으니 나는 꼼짝없이 통금 해 제때까지 K와함께있어야하는형편이되었다. 술에 취한 K는 방에 눕히자마자 잠에 녹아떨어졌 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옆에서 뜬눈으로 말똥말똥 밤을 새우고 있었는데, 얼마 후 K가 바스스 일어나더니 화장 실에 가겠다고 비틀거리며 방문을 나서는 것이다(그때는 여관도화장실은밖에있었다). 저러다 쓰러지지 싶어 K를 따라나섰는데, 도착한 곳은화장실이아니라목욕탕이었다. 여기는화장실이아 니라고 말할 새도 없이 K는 옷을 내리더니 소변을 보았 다. 그러고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큰일까지 연거푸 치 르는것이아닌가. 순식간 벌어진 일에 망연자실했지만, 거의 반사적으 로 뒤처리를 하고 나는 K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눕혔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4시, 통금이 해제되 었다. K를 흔들어 깨우니 거슴츠레 눈을 뜨기에 나는 이 제집에간다고작별을하고, 쌍문동집으로돌아왔다.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말없이 외박한 적이 없던 사 람이 갑자기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자 집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밤새 걱정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 다. 그러던 차에 내가 나타났으니 단단히 오해를 했고, 나 는지난밤의사정을해명하느라진땀을흘려야했다. 아침에 출근하자 K는 나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 다. 이후로도 그는 그날의 일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 다. ‘미안하게 되었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가. 취중 일이라전연기억이없나보다치부하다가도서운한건어 쩔수없었다. 내평생그리난감한적은처음이었는데…. 그 K가몇년후세상을떠났다. 문화路, 쉼표 법무사가쓰는수필과시 첫외박의기억 80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