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과 자기 수양을 거친 윤리적 주체가 진실한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푸코의 자기 배려는 오늘 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삶은 행복한 세상 을 만드는 일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젊 었을 때 격정적이었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자기를 돌보고 마음의 평온함을 찾고자 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 것을 세상으로부터의 후퇴나 철수라고 보면 단편적인 해석이다. 푸코가 말했 던 ‘자기 배려’가 그것을 설명해 준다. 때로는 나만 생각하고 나만을 위 한 시간을 갖는 것, 그래서 나의 행복을 찾으려는 것.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 니라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한 인 간 본성의 욕구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생의 행복 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 이기도 하다. 내 삶의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삶의 혁명가가 되자.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행복해도 괜 찮아. 나는 행복하고 싶다고. 말로 루소에게는 최고의 삶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서 찾는 사람은 진정한 행 복을 느낄 수가 없다. 이렇듯 루소에게 행복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었다. 루소가 느꼈던 인생 최고의 행복이 누구에게나 적용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행복의 색깔과 느낌은 저 마다 다르기에 행복은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고, 개인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을돌볼줄아는삶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자신에게로 돌아갔다. 평생 권력에 대한 비판의 철학을 했던 푸코였지 만, 생애 마지막 3년 동안 주체와 진실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기 배려’라는 개념이었다. 푸코에 따르면 “자기 배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이고, 자기 자신 을 돌보는 행위이며,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행위”이다. 자기 자신을 배려한다는 것은 자신의 시선을 외부로부터 ‘내부’ 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의 ‘자기 배려’가 권력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고 개 인적 윤리의 장으로 피신한 것은 아니었다. 푸코는 자기 점 때로는나만생각하고 나만을위한시간을갖는것, 그래서나의행복을찾으려는것. 그것은이기적인것이아니라 내삶을충만하게만들기위한 인간본성의욕구이다. 다시한번말하지만, 인생의행복은주어지는것이아니라 쟁취하는것이기도하다. 내삶의행복을쟁취하기위한삶의혁명가가되자. ┃ 법으로본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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