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졌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힘 들었던 시절에 자신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여유를 갖 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한국인들은 소위 선진국 들을 동경하며 그들처럼 되기를 바랐다.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80년대 이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나라에 다녀 온 유학생과 주재원 등으로부터 듣는 선진국의 문물 은 한국의 초라한 현실과 대비되어 더욱 화려하고 아 름답게 느껴졌다. 한국 가요는 촌스러워서 못 듣고, 한 국 영화는 유치해서 못 보겠다던 시절이었다. 열탕과 냉탕 반복하는 한국인의 자기 상 한국인들은 후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 력했고, 빠른 시간에 몇몇 분야에서의 성취를 이루어 냈으나 한편으로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 다. 이른바 선진국 콤플렉스다. 선진국 콤플렉스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산업 화 시대를 거치며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구 열 강에 대한 열등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대 이후로 한 국인들이 기억하는 한국은 잘나가는 선진국들에 비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초라한 후진국이었기 때문이다. 선진국 콤플렉스에는 그들처럼 ‘선진국이 되고 자’ 했던 한국인들의 욕망이 배어있다. 한국은 조금씩 좋은 나라가 되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인들에게 한국 은 여전히 후진국일 뿐이었다. 1980년대에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고서도, 한국인들은 한국의 문화 수준이나 시 민의식이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선진국은 아직 먼 일이라 생각했다. 어글리 코리안, 추한 한국인. 세계여행 자율화가 시작된 1992년 이후, 한국인들이 스스로에게 붙인 별 명이다. 외국 문화와 여행 에티켓에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인들이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실수를 연발하자 가장 가혹하게 한국인들을 비판한 것은 다 름 아닌 한국인들이었다. 오래지 않아 IMF가 터졌다. ‘우리가 샴페인을 너 무 빨리 터뜨렸다’, ‘역시 우리는 후진국에 불과했다’는 자괴감이 다시 한국인들을 감쌌다. 그 후로도, 2002년 월드컵과 미국발 경제위기,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뒤이은 K-열풍을 겪으며 한국인들의 자기 상은 냉탕과 열탕을 반복하는 중이다. 조금이나마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 지려면 한국인들은 부끄러운 자신들의 모습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 거의 한국인에겐 그 어떤 좋은 점도 있을 수 없다는 태도다. 물론 자기반성은 바람직한 일이다. 아마도 한국인 들이 그토록 부정하려고 했던 유교에 그 뿌리를 두었 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기반성의 습관은, 지금은 한국 의 빠른 변화와 발전의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비하는 바람직한 반성이라 할 수 없으며, 건전한 비판이 아닌 비난과 매도는 단점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한국은 세계의 중심국, 이제는 ‘자기객관화’ 필요한 때 이제는 균형을 찾을 때다. 한국은 정치, 경제, 사 회, 문화, 군사력 등 그 어떤 지표로 보아도 당당한 세 우리는 고난의 현대사를 겪으며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외세에 의해 분단이 되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라를 일으켜 세웠고,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잡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성취를 이루었다. 이제는 우리가 누군지 차분히 바라볼 때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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