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도 그는 대한법무사협 회 법무사연수원 교수,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 명예회 장직 등을 맡아 활동 중이다. “법무사가 되고 한 해 정도 지난 2000년경, 국제 앰네스티 활동에 참여한 것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법원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부터 인권 활동에 관심이 많았 고, 법무사가 되고는 스스로 앰네스티 한국지부를 찾 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재야 법률가로서 앰네스티의 인권 및 권리 구제 활동에 큰 보람을 느꼈다. 이후 앰네스티 활동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고, 자연스럽게 한국지부 감사와 법률가위원회 부위원장 등 책임 있는 직책을 맡아 활 동했다. 국제앰네스티 활동 이후에는 지자체, 정부기관, 민간기관, 법무사업계 등으로 사회활동 범위가 점차 넓 어졌다. 그 스스로의 의지와 열정도 있었지만, 그간의 활동을 통해 맺어진 여러 인간관계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법무사로서는처음으로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장’ 선임 연구와 집필을 좋아하는 그는, 다양한 사회활동 중에서도 특히 학회 활동에 많은 열정을 쏟았다. 민사 집행법학회, 한국등기법학회, 한국신탁학회, 한국후견 학회, 한국포렌식학회, 상사법학회 등에서 고문, 부회 장, 감사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 며, 학계와 실무계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해 왔다. “법무사 개업 후인 1996년, 50세의 나이에 경북 대 대학원에서 민사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 다. 법무사 업무로 바쁜 시간을 쪼개 학위를 취득한 때 문인지 학회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되더군요.” 그는 학회 활동을 같이하는 많은 법학자와 실무 가들과 함께 토론하며 식견을 넓혔고, 이를 바탕으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법무사로서의 전문적 입지를 다 질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민사집행법학회가 민사소송법학회에서 우리는 모두 사회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 두 가지 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대체로 사회적인 삶은 개인 적 행복을 위한 가면, ‘사회적 가면’이라 여겨진다. 진정 한 나의 행복을 위해 때로는 마음과 상관없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사회적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삶에서는 두 가지가 분명하게 분 리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활동에 충실하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서 개인으로서 진정한 행복을 맛보는 경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7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엄덕수 법무사(서울중앙회)가 바로 그런 경 우의 모범사례가 아닐까 한다.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풍성한 인간관계, 법무 사로서 안정적인 사무소 운영, 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개인적 보람까지, 순도 90%의 행복을 느낀다는 엄 법 무사의 공적이면서 사적인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국제앰네스티활동계기로 점차사회활동범위넓어져 새해 77세를 맞은 엄덕수(서울중앙회) 법무사는 여전히 일선 법무사로 바쁘게 살고 있다. 3명의 직원 을 둔 법무사사무소 업무는 기본이고, 그 외 각종 학 회 활동과 자원봉사, 지자체 민간위원 활동 등 그야말 로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러고 보니 1999년, 법원 공무원 퇴직 후 법무사 로 개업한 이래 그가 바쁘지 않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 다. 그에게는 늘 다양한 사회적 직함이 따라다녔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원회 부위원장,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전문상담위원, 서울시 관악구 상 공회의소 부회장, 관악구 정책자문위원 및 주민참여예 산위원, 광운대 법대 강사, 서울중앙회 관악지부장, 대 한법무사협회 법제연구소장,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 부 이사장, 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장…. 지난 23년간 그가 지나왔던 다양한 직책은 일일 ┃ 법무사시시각각 법무사가 사는 법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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