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을 해주고는 있지만, 그 미운 마음 을 주체하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 살면서 가족들에게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채점표가 나이 들어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가 족들에게 준 관심과 사랑을 아는 가족 이라면 더 크게 키워서 내게로 돌려준 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그냥 우스 갯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힘 있고 돈도 있는 시절에 는 그저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산다. 그 러다가 나이 들어 힘도 없어지고 돈벌 이도 시원치 않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 다. 은퇴하고 나면 가족들이 일제히 “아 버지 수고하셨어요”라며 반겨줄 걸로 알았지만, 정작 존재감 없이 주변으로 밀려난 것 같다는 푸념을 흔히 접한다. 대개는 잘나가던 시절에 가족들 을 사랑하는 방식에 서툴렀던 탓이 많 다. 아무리 바쁘게 일을 하는 시절이라 도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많은 대화를 나누고 정서를 공유해 나가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가족끼리 서로 무 관심하게 소가 닭 보듯 하면 나중에 가 서 그 업보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자식들과 단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 일하는 가장이라 는 관념 속에서 자식들과 관련된 일은 모두 부인에게 맡겨버리고 방관자가 된 다. 그러다 보니 자식들에게 어떤 일 이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렇 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적어진다. 은퇴하 고 집으로 돌아오니 당장 자식들부터도 내 마음을 몰라주더라는 푸념은 그래 서 생겨난다. 돌보며 간병하는 배우자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어떤 환자 아저씨는 잠시라도 눈을 떼면 위험한 상태 였다. 뇌수술을 하고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눈만 떼면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래서 부인, 아들, 딸이 교대 하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24시간 옆에 붙어있는 것을 지켜 보았다. 부인이 밤까지 새면서 돌보기는 벅차니까 밤이 되면 직장에서 퇴근한 자식들이 교대해서 밤을 새운다. 하루 이 틀도 아닌데, 정말 어지간한 지극정성 아니면 감당하기 어 려운 간병 생활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숭고 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입원만 시켜놓고 한 번도 와보지 않는 남녀 배우자들의 정반대 사연들도 적 지 않았다. 같은 병실을 쓰던 어떤 장년의 남자 환자는 바 람이 나서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고 있다가 큰 병에 걸 렸다. 갖고 있던 재산도 다 날리고 간병해 줄 사람조차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결국 불쌍히 여긴 부인이 병실을 지키고는 있었는데, 남편에 대한 원망과 욕을 두고두고 하고 있었다. 자기 몸 하 나 가눌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차마 내버려 두지 못해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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