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하는 것은 비교적 현대의 귀신들을 다룬 예능 방 송 「이야기 속으로」나 「심야괴담회」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한국 귀신 이야기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들 사연의 핵심은 ‘억울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의 귀신들은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사연을 호소하 고, 그 한(恨)을 풀기 위해 나타난다. 아랑과 장화홍련 을 비롯한 귀신들이 사또들에게 한 말은 “사또, 억울하 옵니다.”였던 것이다. 담력이 약한 사람들이 제풀에 놀 라 죽어서 그렇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유만 제대로 따져 물었다면 충분히 살아남았을 수 있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억울함이란 무엇일까? 억울이 무엇이길 래 한국인들을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못하고 사또의 침실을 방문하게 만드는 것일까? ‘억울’은 한자로 ‘抑鬱’이라 쓰는데, 이는 문자 그 대로 억눌리고 침울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보통 ‘우 울(depression)’로 옮겨진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억울 을 사용하는 맥락은 우울과는 전혀 다르다. ‘억울’에 ‘하다’가 붙은 ‘억울하다’의 경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람이 처한 사정이나 일 따위가 애매하거나 불공정하여 마음이 분하고 답답하다’라는 뜻이다. 죽어서도 저승에 갈 수 없게 하는 ‘억울’ 감정 ‘우울(憂鬱)’이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 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억울’은 답답하다는 뜻과 더 불어 분하다는 정서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다르다. ‘분 (憤)하다’는 스스로 인정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불쾌, 불행한 사건을 받아들여야 하는 데서 오는 원망스럽고 귀신 이야기는 각 나라의 문화와 가치관, 도덕관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의 스토리라인은 대부분 비슷한데, 억울함에 한을 품고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도는 이야기들이다. ‘억울’은 답답하고 분한 감정을 의미하는데, 한국의 귀신들은 왜 그렇게 답답하고 억울한 것일까? 귀신이 실재하느냐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중요 한 것은 귀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무언가 를 귀신으로 이해해왔다. 그리고 그 내용은 문화에 따 라 차이를 보인다. 문화에 따라 사람들이 중요하고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좋고 싫은 것, 선하고 악한 것 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 나라 의 귀신 이야기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 는 경험들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귀신 이야기의 동일 패턴, 억울함과 한(恨) 한국 귀신 이야기의 원형(원형)은 ‘아랑전설’이다.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은 그녀를 겁탈하려는 통인에게 저항하다가 살해당하고 시체가 버려진다. 이후 새로 부 임하는 사또마다 귀신을 보고 죽어나가는데, 아무도 밀양에 가려는 사람이 없을 때 담이 큰 사또가 새로 부임한다. 귀신이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자 사또는 이를 듣고 범인을 잡아내 처벌하고, 아랑의 장사를 지 내준다. 귀신은 사또께 큰절을 올리고 저승으로 떠나 고, 이후 사또는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귀신 이야기는 대개 이 아랑전설과 유사 한 스토리라인을 갖는다. 귀신 이야기로 아랑전설과 쌍 벽을 이루는 장화홍련전이 그렇고, 한때 한국인들의 여름밤을 책임졌던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귀신들이 그러하다.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여러 유 형으로 또 나뉘지만, 귀신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을 ┃ 슬기로운 문화생활 한국인은 왜 73 2023. 04 vol.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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