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감정이다. 따라서 억울하다는 말은 자신이 겪은 어떤 일이 불공정하여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그 때문에 매우 답답하고 불쾌하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억울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억울은 우리 역사에서도 꾸준히 발견되는 문화적 정서다. 문 화적 정서란 특정 문화권에서 그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로 표현된 정서로 해당 문화의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억울’은 『조선왕조실록』에 5,816건, 『승정원일기』 에도 5,159건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대개가 “○ ○○가 억울함을 호소하여 다시 심의하게 하였다.” 내 지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없게 하기 위해 재심이나 사 면 등의 조치를 취했다.”는 내용이다. 예로부터 한국인들에게 억울이 중요했다는 사실 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 외에도 신 문고, 격쟁 등 백성들이 억울함을 왕에게 직접 고할 수 있는 제도가 존재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신문고(申聞鼓)는 조선 태종 1년(1401년) 처음 설 치되었는데, 송(宋)나라의 제도를 따라 ‘등문고’라고 하였다가 곧 ‘신문고’로 이름이 바뀐다. 본래 백성들은 억울한 일이 있으면 서울은 주무관사에, 지방은 관찰 사에게 소를 올렸는데, 그 뒤에도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헌부에 고하고, 그래도 억울하면 신문고를 쳐 서 왕에게 직소하게 한 것이다. 다음으로 정조 때에 많이 활용된 격쟁(擊錚)은 ‘징(혹은 꽹과리)을 친다’는 뜻인데, 왕이 행차할 때 징 이나 꽹과리를 쳐서 행차를 멈춰 세우고 자신의 사연 을 왕께 직접 고하는 제도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 화성을 자주 찾았던 정조는 이 행차를 백성들의 억울함을 듣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백성의 억울함은 국정 운영에 매우중요하고또신속하게처리되어야하는사안이었다. 한국인들에게 억울이 그만큼 민감하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이야기다. 물론정신건강에도중요하다. 이를테 면, 예로부터억울은화병의원인으로언급되어왔다. ‘화병(火病, Hwa-Byung)’은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에 대한 편람(DSM)』 4판에 실려있는 한국의 문화적 증후군으로, 화병의 증상에는 불면증, 피로, 공 황, 소화불량, 거식증, 호흡곤란, 심계항진, 일반화된 통 증, 상복부에 덩어리가 있는 느낌 등이 포함된다. 정신의학에서는 화병의 원인을 분노와 같은 감정 의 억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억울로 인한 분노를 발산하지 못하는 데서 화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인이억울함을느낄때는? 부당함을표현할수없을때 그러면 한국인이 억울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문화심리학에 따르면 억울은 자신이 당한 부당한 피해 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경험되는 정서다. 억 울의 정서는 우선, 억울함을 느끼게 만든 상대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지만, 분노 외에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자책과 절망감 같은 자기초점적 정서나 상대방에 대한 배신감이나 서운함 같은 관계적 정서도 뒤섞여 있다. 특히 이러한 복합적 정서는 억울함의 해소 여부와 관계없이 여전히 미해결된 상태로 남아있기 쉬운데, 한 국의문화적증후군으로손꼽히는화병은이렇게해결되 지않은정서들과밀접한관련이있을것이라생각된다.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권에 속하면서도, 유교적 가부장적 전통과 관계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수직성이 강하기 때문에 부정적 정서의 개인적 표현을 강하게 금기시하는 정서표현 규칙을 가지고 있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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