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4월호

한국인마음의주관성은 내가겪은부당함을 ‘억울함’으로만들고, 그억울함이해소되지못하면 ‘화병’이, 화병이지속되면 ‘한(恨)’으로발전한다. 그러니억울함은그때그때풀어야한다. 살아서해결하지못하면죽어서도저승으로 가지못할만큼중요한것이억울이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한국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정서의 표현을 억제하고 조절해야만 하는 상황 을 더 많이 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억울함을 화병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는 정신의학 계의 논의들은 억울의 이러한 측면을 뒷받침한다. 즉, 한국인들은 직접적인 정서표현이 규제되는 문화적 속 성으로 인해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에 따르는 부정적 정서들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억제할 가능 성이 높은 것이다. 특히 상대방과의 관계를 해칠 위험성이 큰 분노 와 같은 정서는 억제해야 한다는 문화적 압력이 더 강 하기 때문에 이를 견디기 어려운 개인에게서는 병리적 인 현상으로까지 발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대상이 자신보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대상에게 화를 내봤자 손해 를 보는 쪽은 자신이 되기 마련이니까. 내가 겪은 일이 상당히 부당한데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 고 더 화가 나는 정서가 억울이다. 부당함을더욱부당하게느끼는한국인 한국인들이 억울에 민감한 것은 한국인들의 마 음 경험 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혹자는 한국에 유 난히 억울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전근대 시기에 백성들에게 억울한 일이 없었던 나라는 존재 한 적이 없다. 문화는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어떻게 받 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데, 한국인들의 문화적 경험방식이 자신이 경험한 부당한 사건을 ‘억울 하다’고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회차에서 살펴본 한국인들의 마음 경험 방 식을 요약하면, ‘주관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인은 자신에게 닥친 부정적인 사건을 더욱 부당하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억울의 정의에도 처한 일이나 사정이 ‘애매하여’가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대단히 억울한데 다른 사람들은 별일 아니 라는 반응에 더 상처받았던 기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마음의 주관성 은 내가 겪은 부당함을 ‘억울함’으로 만들고, 그 억울 함이 해소되지 못하면 ‘화병’이, 화병이 지속되면 ‘한 (恨)’으로 발전한다. 그러니 억울함은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 살아서 해결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할 만큼 중요한 것이 억울이다. 억울함호소, 의사소통수단으로기능하는장점도 그러나 억울에 부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 다. 한국인들에게 억울은 분노의 억제보다는 표출에 가까우며, 간접적이나마 부정적 정서를 표출하는 것은 이를 쌓아두고 억제하는 것보다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한국인들이 예전부터 술과 노래, 춤을 좋아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억울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억울함의 호소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했다. 과거의 신문고나 격쟁, 지금은 폐지된 국민청원, 여전히 각 기관 홈페이지에서 하나씩 찾아볼 수 있는 사이버 신문고의 기능은 문제의 해결이라는 점 외에도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부당함을 사회적으로 알리는 소통 이라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누군가 억울하다고 하면, 일단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문제의 해결은 그다 음이다. ┃ 슬기로운문화생활 한국인은 왜 75 2023. 04 vol.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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