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5월호

그러다가 집집마다 고기반찬이 올라오기 시작한 80년대가 되면서 비로소 즐길거리를 찾을 만한 여유 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5·60년대 미군 클럽 에서 시작된 유흥문화와 70년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고고장 등의 놀이문화가 있었으나 일부 계층 에 국한된 것이었고, 우리네 부모님 같은 보통 사람들 이 놀 만한 곳은 마땅치 않았던 현실에서 ‘관광’은 그 간의 억눌린 욕구를 분출할 유일한 계기였다. 일단, 한국인의 억눌린 욕구를 분출하는 행위가 춤과 노래라는 사실부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춤 과 노래는 2000년 전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유서 깊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행 위 양식이기 때문이다. 한번 시작되면 몇 날 밤을 계속한다는 동이족들 의 놀이문화는 당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무척 생소 했던 모양이다. 고려의 팔관회도 그렇고, 조선시대에도 큰 굿이 벌어지면 기본적으로 며칠씩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과거의 굿은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일종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지역 축제의 성격이었는데 아마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 묘사한 삼한시대의 축제와 크 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확실한 점은 그 세 월 동안 춤과 노래는 한국인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문화가 수십 년 이상 단절되었으니 한국 인들의 마음속에 그동안 억압된 춤과 노래의 욕구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단 놀이가 시작되자 춤판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 ‘관광 지’에서 열렸던 춤판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까지 이어진다. 아니 절정에 달한다. 이제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과 가족밖에 몰랐던 한국인들에게 관광은 비 로소 한숨 돌릴 수 있는 일탈이었다. 예전처럼 며칠씩 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 치의 아쉬움도 남지 않게 하얗게 불태우는 것. 이것이 고속버스 춤의 문화적 기 능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여러 문화에서 존 재해 온 축제의 기능이 이것이다.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일상에서 축적된 부정적 감정들을 해소하고, 새로운 나날을 살아갈 수 있는 에 너지를 충전해 왔다. 고속버스 춤은 과거에서부터 이 어지던 전통은 끊어졌으나 새 시대의 새로운 조건에서 새롭게 찾아낸 축제라 할 수 있다. 빠른 음악과 추임새를 통한 몰입, 자유로운 흥이 폭발 고속버스 춤의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관 광버스 춤의 중요한 특징은 엄청난 몰입에 있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는 버스 안은 춤추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공간은 좁고 버스는 흔들린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보통 집중력으로 는 불가능한 일이다. 심리학에서 몰입은 보통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flow”라는 개념을 의미한다. 어떤 행위를 하면서 물 흐르듯(flow)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상태다. 그러나 고 속버스 춤의 몰입은 이와는 달리 의도적인 측면이 강 하다. 춤을 추다가 자연스럽게 춤에 몰입하는 것이 아 니라 “지금부터 시작!” 하면 바로 온몸과 마음을 다해 춤판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입을 도와주는 것이 음악이다. 휴게소 에서 많이 파는 고속도로 메들리 노래들은 원곡보다 두어 배 빠른 박자로 편곡돼 있다. 아예 고속버스에서 틀기 위해 작곡되는 노래들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이 노래들에는 보통 음반과는 달리 ‘이히~’, ‘앗싸~’, ‘살리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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