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5월호

힘들고 억울한 일 많은 민초들이 삶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끌어올리던 긍정적 에너지가 바로 신명이다. 고속버스 춤은 이러한 신명에 도달하기 위한 제의다. 빠른 비트의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고, 함께하는 이들과의 공감은 자신의 내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고, 살리고~’등의 ‘추임새’가 함께 녹음된 경우가 많다. 추임새는 우리 전통예술의 용어로 “얼씨구”, “지 화자”, “잘 한다” 등 음악 사이사이에 들어가 ‘춤을 추 게 만드는 말’을 뜻한다. 추임새는 지금 여기서 함께 하 는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확인해 준다. ‘아, 여기선 춤을 추어도 되는구나’ 하는 약속된 신호의 역할을 하 는 것이다. 이러한 추임새를 통해 사람들은 더욱 빨리 그 상 황에 몰입하게 된다. 이 몰입에서 고속버스 춤의 진정 한 효과가 나온다. 바로 자유로운 ‘표현’이다. 고속버스 춤의 동작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개개인의 개성이 살아있는 프리스타일, 즉 막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흥에 따라 배운 적도 없고, 정제되지도 않은 몸짓을 내 놓는다. 야밤의 고속버스 춤, ‘신명’에 도달하기 위한 제의 현대무용가 안은미 씨는 2015년 프랑스 파리의 한 축제에서 한국 아주머니들의 막춤을 주제로 공연을 열었다. 춤을 배워본 적 없는 한국 아주머니들의 공연 은 평단과 관객의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그들의 자유 로운 표현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자유로운 표현은 내 감정을 이해하고 드러내는 데 도움을 준다.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물 론,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찾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경험, 이러한 감정을 한국인들은 ‘신명’이라 불러왔다. 신명은 고운 옷 차려입고 무대에 서는 예술인들 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명은 먹고사느 라 뭐 하나 제대로 배울 시간도 없었던 이들의 삶 속 에 이어져 내려왔다. 힘들고 억울한 일 많은 민초들이 삶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끌어올리던 긍정적 에너지가 바로 신명인 것이다. 고속버스 춤은 이러한 신명에 도달하기 위한 제 의다. 신명을 내기 위해 사람들은 긍정적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행위에 몰입한다. 빠른 비트의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고, 함께하는 이들과의 공감은 더 이상 타인 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내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준다. 마침내 체면 때문에, 성격이나 사회적 지위 때문 에 평소에는 하지 못하던 그 어떤 행동도 허용되는 완 벽한 자유의 순간이 찾아온다. 막혔던 기운이 터져 나 와 자유롭게 흘러넘치는 순간이다. 한국인들은 이 신명을 맛보기 전까지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잠시의 일탈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신명으로의 욕구는 더 욱 불타오른다. 관광에서 돌아가는 야밤의 고속버스가 춤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게 한 점 아쉬움 없이 불태우고 나서야 한국 인들은 ‘후련하다’고 말한다. 달리 말해, 후련함을 느끼 지 못하면 한국인들은 ‘논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몇 날 며칠씩 계속했다는 한국인들의 놀이문화 근원이 여기 있다. 코로나 시대, 한국인은 어디서 신명을 부르고 있을까?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다. 전통적인 축제들은 이미 그 명맥을 잃었고, 마을 단위로 떠나던 관광 여행 도 그 유행이 지났다.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으로 밤늦 게까지 2차, 3차를 옮겨 다니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 다. 2023년의 한국인들은 어디서 무엇으로 신명을 부 르고 있을까. ┃ 슬기로운 문화생활 한국인은 왜 73 2023. 05 vol.671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