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우리’를통해자신을인식하고 확장한다. 우리안에서다른이는 더이상남이아니기때문에 더친밀하고밀접한관계를맺는다. 이는 ‘우리’ 관계에합의하는사람에게는 더할수없이따뜻하지만, 그반대라면불쾌한참견과오지랖으로 받아들여질수도있다. 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 각자가 개인적 수 준을 넘어서 고교 동창생 ‘우리’라는 통일된 전체를 이 루기 위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력할 뿐 아니라 그 통일성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우리 요소가 아닌 개인적 요소는 암묵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도록 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정체성으로 전환되는 것을 뜻하며, 우리가 되려는 개인의 노력과 변화가 ‘우 리’ 형성의 충분조건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은 의외로 쉽게 ‘우리’가 되기도 한다. 학연, 지연 같은 구체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우리도 있지만 서로 뜻이 맞아서, 의기투합해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형성되는 ‘우리’는 한국의 ‘우리’를 이 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니라 곧 나 자신이 된다. 즉 한국인의 ‘우리’는 집단 속에 개인이 함몰되어 ‘나’는 사라지고 ‘우리’만 남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가 통합된 존재로서, ‘내가 우리 이고, 우리가 곧 나’인 독특한 정체성으로 발전하게 되 는 것이다. ‘우리 아내’가 ‘내 아내’와 같은 뜻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즉, 한국문화에서 개인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정 체성을 확장시킨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있어 ‘우리’란 확장된 자기(extended self)를 뜻한다 말할 수 있다. 쉬운 표현으로, “나, ○○대학교 다녀”, “여기가 우리 회사야”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속한 집단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확장된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한국인들이 많은 단체를 만들고 스스로 대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속한 집단, 단체는 곧 ‘나’이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철새처럼 정당을 옮 겨대는 정치인들의 심리도 동일하다. 자신을 어떤 집단 에 소속된 존재로 생각하면 집단에 대한 책임과 의무 때문에라도 그럴 수 없다. 자신이 속한 정당이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정당을 바꾼다는 발상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안좋게보는문화라해서나쁜문화아니다 한국인들은 ‘우리’를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확장 하며,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다. 우리 안에서 다른 사 람은 더 이상 남이 아니기 때문에 정(情)으로 대표되는 더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더 중요하고 내밀 한 감정들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관계는 ‘우리’ 관계에 합의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따뜻하고 지지가 되지만, 이에 대한 합의가 없는 사이에서는 불쾌한 참견과 오 지랖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또는 대표하는 집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주체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내 일처럼 우리의 일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신을 더 잘 대변한다고 생각되는 새로 운 집단으로 계속해서 정체성을 바꾸거나 우리의 일 원으로 해야 할 일은 뒷전인 채 다른 사람들의 뒤에서 ‘우리’의 장점들만 곶감 빼 먹듯이 빼 먹기도 한다. 문화란 그런 것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장 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내가 보는 측면이 밝고 긍정 적이라 하여 무조건 좋은 문화가 아닌 것처럼, 내가 보 는 부분이 어둡고 부정적이라고 하여 나쁜 문화라고 낙인찍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가 익숙한 우리 문 화뿐만 아니라 접하기 어렵고 그 자세한 내용까지 알 기 어려운 다른 문화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 ┃ 슬기로운문화생활 한국인은 왜 77 2023. 07 vol.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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