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8월호

ISSN 2233-4688 08 2023 vol .674

발행인 이남철 편집인 박철훈 편집주간 김병학 편집위원 강상수·강성구·강신기·권중화·김정준·김정호·박성익 박윤숙·윤정진·윤평식·이경록·장태헌·정진홍·최상익 편집장 임정와 편집간사 김승준 발행처 대한법무사협회 발행일 2023년 8월 5일 통권 제674호 디자인·인쇄 주식회사 더블루랩 일러스트 혜영드로잉 정기간행물 등록 1965년 5월 7일 강남, 라 00102호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651 (논현동, 법무사회관) 전화 02)511-1906~9 팩스 02)546-4362 이메일 <편집부> kabl@hanmail.net 홈페이지 www.kabl.kr 비매품 ※ 본지에 게재된 글들은 대한법무사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등 기 소 , 등 기 신 청 서 류 제 출 8 월 법 무 사 의 소 소 일 상

Contents 2023년 8월 vol. 674 08 46 법으로 본 세상 12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_ 면책기각에 대한 즉시항고 사건 (2017·2022년 서울회생법원) 18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_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24 주목 이 법률 _ 「국내입양특별법」 개정 및 「국제입양법」 제정의 의미와 개선 내용 28 법률고민 상담소 _ 민사집행, 가족관계등록 분야 32 새로 시행되는 법령 _ 「공인중개사법」 일부개정(2023.7.2. 시행) 등 89 내가 만난 법무사 _ 박종천 법무사(광주전남회)

법무사 시시각각 08 현장 리포트 _ ‘국민 불편 해소와 사법 접근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공청회’ 개최 34 이슈와 쟁점 _ ‘국민 불편 해소와 사법 접근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공청회’ 주요내용 정리 _ (국회 공청회+) 한국 갤럽, 「법무사의 사법보좌관 업무 관련 국민인식 조사」 결과 40 발언과 제언 _ 출생통보제 도입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의 의미와 남은 과제 42 이슈 투데이 _ 법원행정처, 제5회 등기제도정책협의회 개최 등 46 법무사가 사는 법 _ 30대 부부 법무사, 김지안·황배익 법무사 50 성년후견 사례 _ 피한정후견인의 건강회복으로 후견 종료된 사례 81 56 슬기로운 문화생활 06 미경유람 _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 68 한국인은 왜 _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한국인의 정(情), 좋기만 한 걸까? 72 문화路 쉼표 _ (수상) ‘알빈옥’의 가르침 74 부자되는 책읽기 _ 알 리스, 잭 트라우트 『마케팅 불변의 법칙』 76 소확행 건강관리 _ 앉아서 일하는 사람을 위한, 피로유발 자세 바꾸기 동정·등록 78 협회는 지금 _ 협회 · 지방회 · 법무사 동정 82 법무사 등록공고 · 신규등록 88 편집위원회 레터 _ 엄마와 뽀삐 현장활용 실무지식 52 맞춤형 최신 대법원 판례 요약 _ 2023.4.27.선고 2017다227264판결 등 56 유비무환, AI 이야기 _ AI는 인간의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인가? 62 나의 사건수임기 _ 양도인(원 임대인)을 상대로 임대보증금 반환을 청구한 사례(진행형 사건)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 06 미경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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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의 ‘사법보좌관업무 신청대리’로 국민불편 해소해야 국민 불편 해소와 사법 접근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공청회 개최 대한법무사협회 - 국회의원 인재근·김종민·권인숙·김영배 공동 주최 08 현장 리포트

2023. 08 vol.674 대한법무사협회(협회장 이남철)는 지난 7.13.(목) 14:00,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인재근·김종민·권인숙·김영배 의원과 공동으로 ‘국민의 불편 해소와 사법접근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공청회는 법원 업무 중 사법보좌관이 담당하고 있는 임차권등기명령, 상속포기, 한정승인, 경매, 지급명령 등 비쟁송적, 부수적 업무는 국민의 실생활에 밀접한 분야이니만큼 그 절차를 간이하게 하여 사법 접근권을 강화하고, 국민 가까이에서 생활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법무사에게 신청대리권을 부여해 국민 불편을 해소할 수 있도록 「법무사법」을 개정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 법무사 시시각각 현장 리포트 09

공청회를 공동 주최한 권인숙 의원은 개회사에서 “2021년 기준 법원에 접수된 민사사건 445만 8천 건 중 300만 건 정도 가 비쟁송적 사건으로, 많은 부분 법무사를 통해 처리되고 있으나 현행법상 신청대리 권이 인정되지 않아 의뢰인의 불편이 계속 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불편 해소를 위해 지난 4월 대표발의한 「법무사법」 개정안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이남철 대한법무사협회장은 “「법 무사법」 개정안은 민생법안으로서 법무사 가 실제 처리하고 있는 가족관계등록, 상 속승인, 임대차와 경매, 비송사건 등 생활 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국민의 편 의성과 접근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라면서 “공청회를 통해 서민과 소상공인 등 보다 많은 분들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법률서비 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원 한다”고 밝혔다. 1. 국민의례 2. 권인숙 의원 개회사 3. 이남철 협회장 개회사 4. 소병철 의원 축사 5. 서영교 의원 지지방문 1 2 3 4 5 10

2023. 08 vol.674 6~8. 토론하는 패널들 9~10. 참석자들의 질의응답 11. 내외빈과의 기념촬영 안갑준 전 한국등기법학회장을 좌장으로 본격적으로 진행 된 이날 공청회에서는 ‘사법보좌관 업무와 국민의 사법접근권 강 화’(한국외국어대학교 강구옥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발표) 및 ‘국민 불편 해소를 위한 「법무사법」 개정의 필요성’(대한법무사협회 황 정수 법제연구소장 발표)의 2가지 주제 발표가 있었고, 함영주 중 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유동주 머니투데이 정책사회부 차장, 윤철한 경실련 기획연대국장, 박인복 한국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 장, 장희정 한국한부모연합 대표가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는 법무사와 일반시민을 비롯하여 국회 법 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소병철 의원, 더불어민주당 서영 교 의원 등 25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p.34에 이어짐> 6 7 8 9 10 11 ┃ 법무사 시시각각 현장 리포트 11

유병일 ● 법무사(서울서부회) 무난했던 면책사건, 결정까지 5년이나 걸렸던 이유 면책기각에 대한 즉시항고 사건(2017·2022년 서울회생법원) 12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법무사가 실제 수임한, 이 시대 민초들의 생활사건 이야기

2023. 08 vol.674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법 무사 시험 수험생 시절, 궁핍에 시달렸다. 나름대로는 주경야독(晝耕夜讀), 형설지공(螢雪之功)의 노력을 거 듭한 끝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고, 그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그러나 합격 이후 법무사 연수원에 들어와 여러 동기 법무사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듣자 하니, 필자 정 도는 고생한 축에도 못 낀다는 걸 알고 크게 놀랐던 기 억이 있다. 하지만 필자로 하여금 ‘세상에 인생이 어떻게 이 렇게까지 고달플 수가 있는가’ 하고 한탄하게 한 것은, 연수원을 마치고 법무사로 개업한 후 파산·면책 사건 을 위해 찾아온 여러 의뢰인의 사연을 들었을 때였다. 하나같이 기구하고 핍진한 삶의 이야기들. 그런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서채 무 씨도 그런 의뢰인 중 하나였다. 가족·친지 돈까지 영끌해 투자한 사업의 실패, 인생 나락에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하던 서채무 씨는 사업수완 을 발휘해 짧은 시간에 큰돈을 모았다. 돈이 모이자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에 투자에 눈을 돌리게 되었 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서채무 씨는 서울역 근방의 신축상가 분양 사업 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에 참여했는데, 잘될 것 같은 생 각에 주변 지인과 집안 친지들 돈까지 싹싹 쓸어모아, 소위 ‘영끌’ 투자를 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 생각과는 달리 여러 문제가 꼬이면 서 그는 투자자인지, 사기 피해자인지 모를 애매한 상 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사업 주체가 채무를 부담하는 형식으로 작성된 일부 계약서에 그가 사업 주체인 것 처럼 서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상가 분양이 늦어지면서 그는 그 계약서에 따라 금융권의 대출금을 변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지 인과 집안 친지들에게서 끌어모은 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부족한 생 활비를 메우기 위해 여기저기서 닥치는 대로 돈을 빌 려 생활했고, 나중에는 어디에 얼마의 부채가 있는지 도 모르는 상태에서 채무변제 독촉에 시달리고, 경제 적 궁핍에 시달리면서 가정불화가 일어났다.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서 두 명의 자녀를 키 우게 되었다. 그러나 돈에는 눈물이 없는 법이라 그의 사정은 알 바 없다는 듯 채권자들은 법적 절차를 통한 채무 회수에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그의 통장이 전부 압류되었다. 이로 인해 본인 명의 통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서채무 씨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워졌고, 어쩔 수 없이 지인 명의 통장을 사용해 금융권 거래를 할 수밖 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어느새 사춘기를 맞 은 두 아이가 문제였다. 궁핍한 집안 형편에 대한 불만 과 반항으로 아이들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 친 격으로 그간 통장 사용에 협조했던 지인도 더 이상 자신 명의의 통장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제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생각한 서채무 씨는 삶에 대한 의지를 놓고 싶어졌다. 그러나 아이들 때문에라도 그럴 수도 없는 일이어서, 사방팔 방 살길을 찾아 알아보던 중 파산·면책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던 서채무 씨는 분양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고, 다액의 채무를 지게 된다. 부부관계가 악화되어 이혼하고 홀로 두 아이를 키웠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부채는 10억 원이 넘는 금액. 부채 발생 경위가 명백하고, 재산도 없어 파산·면책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이혼 당시 아내에게 넘긴 상가로 인해 사건은 엉뚱하게 전개된다. ┃ 법으로 본 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3

파산·면책만 되면, 채무가 없어지나요? “법무사님, 파산·면책만 되면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요?” 파산·면책제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서채무 씨가 물었다. 보통 파산·면책제도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면책 결정을 받게 될 경우, 자신이 지고 있던 채무는 어떻게 되는지를 가장 궁금해한다. 채무가 완 전히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에서 나 대신 채무 를 갚아주는 것인지…. 진짜로 나라에서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줄 알고 필자를 찾아왔다가 설명을 듣고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서채무 씨도 필자가 “면책”에 대한 법률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자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법에서는 채무와 책임을 분리합니다. 채무자는 채무와 책임을 다 지는 자이고, 보증인은 채무 없이 책 임만 집니다. 면책은 용어 그대로 책임을 면해주는 것 이니 채무는 그대로 있고, 변제할 책임만 없어지는 거 예요.” 필자의 이런 설명을 서채무 씨뿐 아니라 다른 의 뢰인들도 백이면 백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무도 알아듣 지 못한다는 것은 설명하는 필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 이니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턱대고 법적 개 념을 빼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까 채권자가 달라고 할 수 없는 부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채무자가 갚고 싶으면 갚아도 되지만, 채권자는 달라고 할 수 없는 채무인 것이지요.” 이렇게 설명하자 조금 이해가 되는지 서채무 씨 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요, 법무사님, 저도 파산·면책이 가능한 거지요?”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지만, 필자의 판 단으로는 가능해 보였다. 긍정적인 답변에 만족한 서채 무 씨는 “당장은 돈이 없어 신청이 어려우니 돈을 마련 해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 평이한 파산·면책 신청사건, 그러나 엉뚱한 방향의 전개 6개월 후. 서채무 씨가 사무실에 다시 나타났다. 그러려니 하고 잊고 있었는데, 돈이 마련되었으니 이제 파산·면책 신청을 하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서채무 씨 의 파산·면책 신청을 위해 대충 들었던 그의 상황을 정 확하게 정리해 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서채무 씨는 부동산중개업을 했다. 그러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신축 건물 분양 사업에 손을 댔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한 사람이 금융권 대출을 받고, 나머 지가 연대보증을 하는 방식으로 금원을 차용, 건물을 신축 해 분양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부동 산경기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분양에 실패했고, 대출금 이자 등의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그는 다액의 채무를 지게 된다.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자 부부관계가 악화되었고, 이혼 후 홀로 두 아이를 키우던 중 채권자들이 지속적으로 채권추심 문서를 집으로 발송하며,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도 엇나가 기 시작했다. 그의 부채는 10억 원이 넘는 금액. 그러나 부채 발생 경 14

2023. 08 vol.674 서채무 씨가 불출석한 채 2017.9.8. 두 번째 채권자집회 기일이 열렸다. 법원은 다시 기일을 연기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9.11.8. 세 번째 기일이 열렸으나 이번에도 서채무 씨는 불출석했고, 법원은 2019.12.13.로 또다시 기일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날 역시 서채무 씨가 불출석하자 법원은 마침내 절차를 종결, 2020.1.15. 면책기각 결정을 하였다. 위가 명백하고, 재산도 없으며, 40대 후반에 별다른 기술이 없어 취업이 어렵고, 취업한다 해도 월급으로 미성년인 두 자녀를 부양하며 일부라도 채무를 변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이런 정도의 상황이라면 큰 부담 없이 파산·면책 의 신청이 가능한, 비교적 평이한 사건이라 할 수 있었 다. 필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파산·면책 신청서를 제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상대로 파산 결정이 났다. 생각 보다 쉽게 파산 결정이 내려져서인지 서채무 씨도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어 일상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사건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혼 당시 아내에게 넘긴 상가가 문제, 결국 면책기각 결정 서채무 씨는 아내와 이혼하면서 소유하던 조그마 한 상가를 아내 명의로 넘겨주었다. 분양 사업에 영끌 한 처가 사람들의 투자금이 전액 손실을 보게 되었으 니,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은 필자도 몰랐다. 이혼할 당시 아내에 게 지급한 재산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분명히 없 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서채무 씨는 전액 손실 처리된 처가 재산에 대한 채무변제 성격으로 넘겨준 것이라, 이혼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파산관재인은 “상황은 이해하나 말로만 할 수는 없고, 그 당시 처가에서 돈이 투자된 증거를 제출하든지, 아니면 부동산 가액의 일부를 금전으로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서채무 씨는 전 부인에게 연락 해 파산에 필요한 당시 자료를 달라고 하는 것은 도저 히 할 수 없으며, 파산관재인이 말하는 금전 역시 마련 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파산관재인에 대응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던 서채무 씨는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2017.7.7. 채권자집회 기일에 출석하게 되었 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원론적으로 파산관재인의 지시 를 잘 따르라고만 하고, 다시 기일을 지정해 버렸다. 법정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전부 설명하겠다며, 많은 준비를 했던 서채무 씨는 결국 한마디도 해보지 못한 채 기일이 종결되자 큰 충격을 받고는 완전히 의 욕을 상실해 버렸다. 필자의 조언에도 전혀 관심을 보 ┃ 법으로 본 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5

즉시항고로 면책 불허가 결정이 파기되면서 다시 면책사건이 진행되었다. 필자가 면책기일을 알려주려 통화를 하니 서채무 씨는 병원에 있다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 기운만은 활기차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2022.4.11. 법원의 면책 허가 결정이 났다. 2017.3.16. 파산․면책 신청 후 장장 5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원하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이지 않았고, 연락 두절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두 번 째 채권자집회기일에 불출석했다. “기일에 출석한다 해도 어차피 제 말은 들으려 하 지 않습니다. 무조건 당시 서류를 제출하거나 금전을 납부하라는 파산관재인의 말만 따르라고 하는데, 제가 출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기일에 불출석 해 벌어지는 일은 모두 제 책임이니 법무사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서채무 씨는 자신은 면책을 받으나 안 받으나 어 차피 상황은 좋아질 것이 없으니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그렇게 서채무 씨가 불출석한 채 2017.9.8. 두 번째 채 권자집회 기일이 열렸다. 법원은 다시 기일을 연기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19.11.8. 세 번째 기일에도 서채 무 씨는 불출석했고, 법원은 2019.12.13.로 또다시 기일 을 연기했다. 그러나 그날 역시 불출석하자 법원은 마 침내 절차를 종결, 2020.1.15. 면책기각 결정을 하였다. 불출석 사유만 파고든 즉시항고장 작성 법원의 면책기각 결정문을 수령하기 전, 사건 진 행 내역을 통해 미리 기각결정을 알게 된 필자는 고민 에 빠졌다. 서채무 씨가 이미 면책을 포기한 듯하고, 필자에 게 책임을 묻지도 않겠다고 했으니 기각결정문이 오면 전달한 후 사건을 마칠 것인지, 아니면 즉시항고를 통 해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받아볼 것인지 고민이 되었 던 것이다. 사면초가에 처한 서채무 씨의 어려운 사정과 궁 핍했던 필자의 법무사 수험생 시절이 오버랩되면서 마 음이 더욱 착잡해졌다. 그런데 막상 면책기각 결정문을 받아보니 괜한 고민을 했다 싶었다. 법원의 기각이유는 단 하나, 불출석. 다른 이유는 전혀 적시되어 있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채무 씨가 채권자집회 기일에 계속 출석만 했다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 564조(면책허가) 제2항, “법원은 제1항 각호의 면책불 허가 사유가 있는 경우라도 파산에 이르게 된 경위,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면책을 허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받아 면책을 받 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출석을 강력하게 권하지 못한 필자의 실책도 일 정 부분 있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즉시항고를 해서 서채무 씨가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16

2023. 08 vol.674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에게 연락해 다시 판단을 받아보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미 자포자기 상태였던 서채무 씨는 이 런저런 말로 둘러대며 소극적으로 나왔는데, 핵심은 어차피 안 될 일에 쓸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비용은 되었고, 면책이 꼭 필요한 상황이니 일단 상급심의 판단을 받아봅시다.” 비용을 받지 않겠다는 필자의 말에 놀랐는지 서 채무 씨는 즉시항고에 동의했다. 필자는 곧바로 즉시항고장을 작성했는데, 면책기 각결정문에서 불출석만을 문제 삼았으므로 항고 이유 에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요지는 이러 하다. “신청인은 현재 삶의 의욕이 거의 없는 상태이며, 50이 되는 나이에 사춘기에 있는 자녀 2명을 키우다 보니 경제적· 육체적으로 파탄 상태에 있습니다. 궁핍한 생활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어린 자녀들에게 무기력한 아버지로 있는 상황이 견디기 어렵습니다. 파산 및 면책 신청을 한 후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하 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출석하 기가 너무 힘이 들었으며, 솔직한 심정은 힘이 들었다기보다 는 파산관재인의 추궁과 법정에 서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 었습니다. 진실을 말해도 들어주지 아니하고 미래가 없는 상태에 있는 신청인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으며, 면책 이 된다 하더라도 별다른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면책이 불허된다고 하더라도 집행당할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막상 면책이 기각되고 보니 그나마 남아 있던 최 소한의 희망이 없어지는 느낌이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항 고하게 되었으며, 최선을 다해 절차 진행에 임하겠으니 면책 으로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5년만의 면책 허가 결정, 당사자도 놀란 결말 2020.1.22. 즉시항고장을 제출하고, 다시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21.11.22. 법원은 서채무 씨에 대한 면책 불허가 결정을 파기하고 원심으로 이송한다 는 결정을 했다. 반가운 마음에 오랜만에 서채무 씨에게 연락하 니,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듯 무척 놀라 워했다. 그렇게 다시 면책사건이 진행되었다. 필자가 면책 기일을 알려주려 전화하니 그는 병원에 있다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 기운만은 활기차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2022.4.11. 법원의 면책 허가 결정이 났 다. 2017.3.16. 파산·면책 신청 후 장장 5년의 시간이 흐 른 후에야 원하던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필자가 항고이유서에도 쓴 것처럼, 면책이 되었다 고 해서 그의 생활 형편이 딱히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러나 마음만이라도 홀가분해져 재기의 기반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 서채무 씨가 파산·면책 신청을 위해 조금만 더 일 찍 필자를 찾아왔더라면, 그리고 면책신청 후 자포자 기하기보다 법원 절차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임했더라 면, 그만큼 고통받는 시간도 짧아졌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기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다. ┃ 법으로 본 세상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17

위기의 시대에도 행복을 찾아가는 12가지 인문학적 성찰 ⑧ 진정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유창선 ● 인문학 작가 18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023. 08 vol.674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누군가가 지금 당신에게 묻는다면 바로 대답이 나올 것인가.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구가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았는데 막상 떠오르는 것들이 없다면 내 삶에는 ‘꿈’이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유한함을 절박하게 알게 되었기에 비로소 인간 본연의 ‘초 심’으로 돌아온 것인지 모른다. 본래 인간은 그렇게 엄청난 욕망과 탐욕을 갖고 세상 에 나타나지 않았을 거다. 결국 두 사람은 버킷 리스트를 이루기 위한 세계 여행을 함께 떠난다. 영화 속의 두 사람 은 죽음을 앞두고도 이렇게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인가요?” 누군가가 지금 당신에게 묻는다면 바로 대답이 나올 것인가.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구가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았는데 막상 떠오르는 것들이 없다 면 내 삶에는 ‘꿈’이 사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는 ‘꿈’이 꼭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을 의 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부자가 되는 것, 출세 하는 것,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커다란 성취를 이루는 것 에 대한 ‘꿈’을 그리며 매달리는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꿈을 온전히 이루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못한 경 우가 훨씬 많다.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것들 내 인생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은 어 떤 것들일까. 잭 니콜슨(에드워드 콜)과 모건 프리먼(카터)이 출연한 영화 「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은 인생에 대한 잔잔한 여운을 주는 작 품이다. 영화에서 시한부 인생 통보를 받은 두 사람은 각자의 버킷 리스트를 적는다. 카터의 리스트는 이런 것들이었다. 1. 장엄한 광경 보기 2. 모르는 사람들 도와주기 3. 눈물 날 때까지 웃기 4. 머스탱 셀비로 카레이싱하기 5. 정신병자 되지 말기 에드워드는 거기에다가 이런 것들 을 버킷 리스트로 추가했다. 6. 스카이다이빙하기 7. 가장 아름다운 미녀와 키스하기 8. 영구문신 새기기 9. 중국 홍콩 여행, 이탈리아 로마 여 행, 인도 타지마할 보기, 이집트 피 라미드 보기 10. 오토바이로 중국 만리장성 질주하 기 11. 세렝게티에서 사자 사냥하기 두 사람이 죽기 전에 하고 싶다고 적은 것들을 보면 하나하나가 사실 대 단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보통 가졌 던 거창하고 화려한 꿈들과는 결이 다 르다. 그런데 시한부 인생이 된 그들에 게는 대단한 것들이었다. 자신의 삶이 시한부라는 판정을 받아 남은 인생의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19

살지는 않았다. 일하고 먹고 쉬고 잠자 기의 반복.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욕망 과 집착은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서 갈구했던 자기 것들을 품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내게 4년 반 전에 겪었던 투병의 시간은 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 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었다. ‘아,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도 이상 할 것이 없는 게 나의 상황이구나.’ 지난 세월 살아오면서 매달렸던 그 많은 욕망과 집착과 주장들이 얼마 나 덧없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어떻 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쥐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 자신을 제대로 담고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자신의 인생을 지탱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자 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공장 기 계에서 찍어내듯 만들었던 것들이었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자신이 진 정으로 원했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라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떠올랐던 버 킷 리스트 목록의 하나하나는 그리 거 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제주에 가서 한 달 살 기, 건강이 회복되어 두 다리로 오를 수 있게만 된다면 한라산 백록담 오르기, 그리고 난 뒤에 유럽의 고즈넉한 마을 에 머무르면서 한 달 살기, 돌로미티 가 서 트레킹 하기, 북유럽에 가서 오로라 보기, 좋아하는 공연들 보러 다니기, 아 담한 서재를 꾸며서 음악을 들으며 책 을 읽고 글을 쓰면서 늙어가기……, 그 런 것들을 하고 싶었다. 건강이 회복되어서 다시 일어서게 된다면 남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들 그러면 인생에서 거창한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 나는 불행한 것인가. 막상 나의 행복과 불행은 그런 거창한 꿈들 에 의해 좌우되지 않더라는 것이 우리가 터득하게 되는 삶 의 이치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얻는 만족들은 생각보다 작 은 것에서 찾아왔다. 흔히 말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 한 행복)이 그런 것들 아니었던가. 비록 큰 부자도 아니요, 높은 자리에 오른 고관대작도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 모차르트를 들을 때 행복함을 느 끼고, 자연 속에서 건강한 두 다리로 트레킹을 하는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나의 행복인 것이다. 행복에는 타인들이 정해놓은 기준이라는 것이 별 의 미가 없다. 내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우선 이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 떠오른, 버킷 리스트 필자 또한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마음속에 적으면서 살아간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언제나 바쁘게 일 만 하던 시절, 특별히 간절히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며 20

2023. 08 vol.674 음 해에 백록담에 올랐다. 성판악 코스를 통해 올랐는데 백 록담을 불과 50미터 정도 남겨둔 마지막 순간에 체력이 소 진되어 애를 쓰다가 결국 포기했다. 거기까지 오르고서도 끝내 백록담 표식 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그 정도로 몸이 회복되어 버킷 리스트에 있던 백록담 오르기를 99% 달성한 셈이었다. 버킷 리스트에 담겨있던 좋아하는 공연 보 러 다니기는 지금까지 열성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평생 정치평론을 하면서 정치적 관심에 많이 갇혀 있 었다. 그러나 투병의 시간에 병실에서 밤마다 음악을 들으면 서 생각했던 것은 정치가 아니라 예술 속에 우리의 삶이 담 겨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공연들을 접하면서 예술이 우리에 게 어떤 치유의 힘과 행복을 안겨주는가를 실감하고 있다. 올해에는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제법 긴 기간 동안 자유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족 과 긴 여행을 가는 일이 다시 가능할까를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그것이 가능해졌고, 더욱이 과거보다 힘들지만 직접 여행의 모든 것들을 설계하고 예약하고, 걷 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곳저곳 누비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물론 내 버킷 리스트 가운데는 아직 실행하지 못한 것 도 적지 않다. 돌로미티 트레킹 같은 것은 몸이 그만큼 받쳐 줄까에 대한 자신감이 아직 없어서 실행하지 못한 경우다. 유럽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일도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러 이 줄지어 나타났다. 이전까지 간직하고 살던 그 많은 욕망과 대의명분과 주장 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이런 것들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그것은 특별히 의도하거나 목적한 것들이 아니었고, 인생의 유한함을 자 각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새로운 인생의 길이었다. 자신의 소소한 꿈들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것들이 비켜서면서 그 아 래에 눌려 있던 자신의 본성적 꿈들이 분출되는 것 같았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고 싶어진 것들이 정말 많 았다. 인생의 새로운 기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4년여 전 마음속에 기록했던 버킷 리스트 가운데 실행에 옮긴 것들도 있 고, 그러지 못한 것들도 있다. 8개월간 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아내와 함께 간 것이 제주였다. 겨울에도 포근한 서귀 포에 숙소를 잡아 한 달 살기를 했다. ‘관광’하러 제주를 간 적은 많았지 만, 제주의 구석구석을 걸으러 간 건 처 음이어서 그 감흥은 매우 새로웠다. 아, 제주가 이렇게도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 구나 싶었다. 그때 새롭게 발견한 것은 어쩌면 제주가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기쁨이 어디서 찾아지는가에 대한 자각 이었는지 모른다. 그다음 해에는 걷는 능력이 더 회 복되어 한라산도 올랐다. 너무도 아름 다운 영실 코스의 계단들을 올랐다. 그러고는 자신감을 얻어 다시 다 살아오면서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쥐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 자신을 제대로 담고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인생을 지탱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공장 기계에서 찍어내듯 만들었던 것들이었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이제라도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버킷 리스트’를 떠올렸다.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1

“1964년 스물네 살이 되던 해, 일 본에서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자마자 나는 유럽에 가기로 결심했 다. … 당시 하고 있었던 인테리어 디 자인 일도 그런대로 잘나가서 생계도 전망이 섰을 때였다. 유럽에 장기간 나가 있는 것은 그 런 업무 흐름을 끊고 모아놓은 돈을 몽땅 쓰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불안보다도 미지의 서구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했다. 우리 세대에게 건축의 역사란 곧 그리스 로 마의 고전에서 근대 건축에 이르는 서 구 건축의 역사였다. 사진으로 보는 서구 건축에는 섬 세하면서도 자연과 일체화하는 일본 건축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함이 있 어 보였다. 그 강렬함이 무엇인지 본고 장에 가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안도 다다오는 이후 자신의 사무 소를 개설할 때까지 4년 동안 돈만 모 이면 여행을 떠나 세계를 돌아다녔다 며, 20대 시절의 여행 기억은 ‘나의 인 생에 둘도 없는 재산’이 되었다고 말한 다. 생계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세계의 건축을 직접 보며 공부한 경험이 세계 적 거장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자 산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사는 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만 거기에는 개인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 다. 주어진 환경 탓만 해서는 할 수 있 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애플 창업자 스 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내가 죽는 순간 곁에 있을 사람은 결국은 가족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지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자명해진다. 우리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놓다가 미처 지우지 못하고 가게 될 것은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기’가 될 것만 같다. 여건이 충족되어 가능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상태다. 버킷 리스트에 담아놓았던 것들을 하나씩 할 때마다 느끼는 기쁨은,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 추가해야 할 항목들 이 아직 많음을 생각하도록 부추기곤 한다. 부부가 함께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현실적인 여러 상황들을 감안하면 황당한 꿈이 될 수도 있지만, 마음이 그것을 원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않은 가라는 생각도 든다. 꿈은 이루어졌을 때 행복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꿈을 간직하고 키워나가는 것만으로도 삶에 활력을 주기 도 한다. 그러니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설혹 이루어 지지 못하는 꿈으로 그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가슴을 살아있게 만들어 준다. 원하는 대로 사는 행복,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안주하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는 많다. 학력주의 사회 일본에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세 계적인 건축가가 된 안도 다다오는 자서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젊은 시절의 도전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22

2023. 08 vol.674 아이들과 화목한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암이 전신으로 전 이된 카터는 먼저 세상을 떠난다. 그 소식을 들은 에드워드는 생전에 카터가 말했던 대 로 딸을 찾아가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딸의 집에서 손녀딸을 처음 만난 에드워드는 손녀의 이마에 키스한다. 그리고 버킷 리스트에 마지막으로 남아있 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에게 키스하기”를 지운다. 두 사람의 버킷 리스트는 그렇게 가족에게로 돌아가면서 결말을 맺는다. 우리가 각자 담아 놓은 버킷 리스트 가운데서 가장 마 지막까지 남을 소중한 것은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 기’가 아닐까. 내가 죽는 순간 곁에 있을 사람은 결국은 가 족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 각해야 할지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자명해진다. 우리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놓다가 미처 지우지 못하고 가게 될 것은 ‘가족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기’가 될 것만 같다. 지나고 나면 너무도 자명한 이치인데, 주어진 모든 것 을 당연시했던 우리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 서 내 삶에서 정작 무엇이 소중했던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 치곤 한다. 나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가족과 함께하 는 것들이라면 더욱 좋겠다. 연설에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도 사랑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일일 수도 있 고, 애인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은 여러분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 게 됩니다. 여러분이 좋은 일이라고 믿 는 것을 해야만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 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 그걸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이 단지 먹고살기 위한 일에 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거다. 가장 소중한 버킷 리스트,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있어 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싶다. 앞에 소 개한 영화 「버킷 리스트」에는 가족 얘 기가 나온다. 카터와 에드워드는 각자 의 가족사에 대해 털어놓는데, 카터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전과 같지 않음을, 에드워드는 딸과의 오랜 이별에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터는 딸을 찾아가 만날 것을 설 득하지만, 에드워드는 강하게 거부한다. 대신 에드워드는 아내밖에 모르고 살 았던 카터를 위해 여자를 사서 보내지 만, 카터는 이를 거부하며 자신이 여전 히 아내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자신에게 여자를 보낸 에드워드에 게 화가 난 카터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3

이하에서는 국내입양과 국제입양으로 분리 규 정하게 된, 양 법의 개·제정 내용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나라의 입양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구 성되어 있는지 검토하기로 한다. 2 「국내입양특별법」의 개정의 의미와 개선된 점 가. 「국내입양특별법」 개정의 배경 우리나라의 입양제도는 「민법」에서 규정하는 일반양자와 친양자제도에 따른 방법, 그리고 「입양 특례법」에 따른 입양의 3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일반양자는 종법제를 중심으로 남계혈통에 의한 가문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던 조선시대에 후사를 이을 목적에서 이루어 1 들어가며 – 「국내입양특별법」, 「국제입양법」 공포 지난 6.30.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과 「국제 입양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7.18. 공포 되었다. 두 법률 중 「국내입양에 관한 특별법」(이하 ‘「국내입양특별법」’)은 1976.12.31. 법률 제2977호로 최초로 제정되었던 「입양특례법」의 제명을 변경한 것이다. 이번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의 제정에 따 라 「입양특례법」에는 국내입양에 관한 규정만을 두 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국제입양에 관한 법률」(이하 ‘「국제입양 법」’)은 2013년 우리 정부가 「헤이그 국제 아동입양 협약」에 서명한 후 10년이 지나고 협약의 국내 이행 을 실질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협약 비준을 위한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입양특별법」 개정 및 「국제입양법」 제정의 의미와 개선 내용 국내·국제입양 법제의 분리, ‘국가중심 입양체계’ 마련 차선자 ● 전남대학교 법률전문대학원 교수 24 주목! 이 법률

졌다. 원칙적으로 동성동본자를 양자로 삼았고, 이 것이 「민법」 제정 당시 일반양자제도로 정착되어 양자는 입양 전 친족관계가 그대로 존속되며(제883 조의2항), 이성양자의 경우 양부모의 성과 본을 당 연히 따르지 않는다. 반면, 2005년부터 가문이나 부모가 아니라 자 녀를 위한 완전양자제도를 목적으로 친양자제도를 도입하였다. 친양자는 3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 또 는 1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가 상대방 배우자의 미 성년인 자녀를 입양하고자 할 때, 친양자 될 자의 친생부모의 동의를 거쳐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입양하는 것을 요건으로 한다. 친양자는 입양부모의 혼인 중 출생한 자로 보 지만, 양친이 학대·유기하거나 그 밖에 친양자의 복 리를 현저히 해하는 때 및 친양자의 양친에 대한 패 륜 행위로 인해 친양자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때 에 한해 파양을 인정한다(제908조의5제1항). 「민법」에 따른 입양제도 외에 보호대상 아동 에게 가정과 안정된 양육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는 「입양특례법」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1976년 제정 당시부터 보호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자의 입양 촉진을 목적으로 한 「입양특 례법」은 개정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요보호 아동’이 안정된 가정에서 양육될 수 있도록 입양 부모의 요 건과 절차를 규정하였다. 새로 도입된 「국내입양특별법」에서도 「입양특 례법」의 이러한 취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체적 으로 국내 입양제도를 대폭적으로 변경하였다. 나. 「국내입양특별법」 개정법률의 대폭적인 개선 내용 먼저, 그동안 「입양특례법」은 입양에 관련된 요건과 입양기관의 역할 등을 규정하였으나, 양자 가 될 아동이 누구인지, 입양을 위한 절차가 어느 단계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입양아동은 민간 입양기관을 중심 으로 보호자의 동의에 따라 결정되었으나, 개정된 「국내입양특별법」에서는 양자가 되는 아동을 시· 군·구 사례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입양이 해당 아동에게 최선인 경우에만 입양대상으로 결정하여 입양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다(제13조제1항). 또, 제19조 입양의 신청에 관한 규정에서 양부 모가 되려는 사람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입양을 신 청하도록 하여 절차의 명확성을 기했다. 특히 「입양특례법」은 제21조 입양기관의 의무 에서 민간 입양기관 입양과정을 맡겼으나, 개정법에 서는 입양신청부터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에 대한 상담 및 가정환경 조사 등을 실시하여 그에 대한 보 고서 작성 등을 모두 보건복지부장관의 책임으로 하여 비로소 입양 절차가 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 지게 되었다(동법 제19조). 다음으로 「입양특례법」에서는 결연 절차를 독 립적으로 명시하지 않았으나 개정법에서는 보건복 지부장관이 ‘입양정책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과 양자가 될 아동을 결연하 는 절차를 규정하였고(제20조), 이에 따라 보건복지 부장관은 결연(제20조제1항) 이후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 및 양자가 될 아동의 성명, 생년월일 등이 기 재된 결연확인서를 양부모가 될 사람에게 발급하도 록 하였다(제20조제2항). 결연에 이어 가정법원의 입양 허가가 있어야 하는데, 「입양특례법」에서는 허가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으나, 개정법에서는 입양허가 청구가 있은 날부 ┃ 법으로 본 세상 주목! 이 법률 25 2023. 08 vol.674

터 6개월 이내에 입양허가 여부를 결정토록 명시했 다(제21조제3항). 이로써 ‘입양의 신청-결연-가정법 원 허가’의 절차가 법령에 명확히 나타났고, 동시에 입양절차 지연 등의 문제로 입양아동 보호에 공백 이 발생할 가능성이 축소되었다. 특히 이번 개정법에서는 임시양육제도를 새롭 게 도입했다. 이에 따라 가정법원은 입양허가에 대 한 청구가 있는 경우, 입양허가를 청구한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임시양육 결정 을 할 수 있다(제22조제1항). 임시양육이 결정되면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이 양자가 될 아동의 임시후 견인이 되며, 양자가 될 아동에 대한 친권자의 친권 행사는 정지된다(제3항). 다만, 가정법원은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의 양 육 태도 문제 등 양자가 될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절 하지 아니하거나, 양부모가 되려는 사람이 양자가 될 아동에 대한 양육을 계속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 는 경우에는 임시양육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 국내 입양에 대한 제도적 지원 이외에 중요한 변화는 구 「입양특례법」과 다르게 파양제도를 규정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입양특례법」에서 입양의 법 적 효과는 「민법」의 친양자 입양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했고(제14조), 그에 따라 파양도 친양자 파양과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었다(제17조 제1항). 그러나 친양자 입양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 다는 학계의 비판이 있었고,1 이러한 점을 고려해 새로 도입된 개정법에서는 입양 이후 친양자와 같 은 지위를 가지게 되는 양자에 대한 파양은 인정하 지 않는 것으로 하였다. 한편, 현재 입양기관과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보 관 중인 기록물을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토록 했 다. 이로써 입양인은 아동권리보장원의 장에게 자신 의 입양 관련 정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입양 관련 정보의 체계적 기록관리와 투명한 정보공개가 가능해지게 되었다(제33조제1항). 3 「국제입양법」 제정의 의미와 개선된 점 가. 「국제입양법」 제정의 배경 1976년 「입양특례법」 제정 당시 국제입양이 국 내입양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부는 그 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2011년 「입양특례법」에 서 국내입양 우선 원칙을 채택하고, 국외입양을 줄 여나가기 위한 국가의 노력 의무를 규정했다. 그러나 국제입양 절차는 여전히 「입양특례법」 을 따르게 되어 있고, 국외 거주 외국인이 국내 거 주 아동을 입양할 때는 입양기관을 통해 절차를 진 행하도록 해왔다(제19조제2항). 또, 국제입양 후 사후서비스 역시 「입양특례 법」에는 별도 규정을 두지 않고, 시행령에서 국내 입양기관이 입양을 원하는 국가나 그 국가의 공인 을 받은 입양기관과 입양업무에 관한 협약을 체결 할 때, 협약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에 ①입양아동 의 신체발달, 정서발달 및 양친과의 유대관계 등 입양 후 입양아동에 관한 현황, ②사후관리의 횟 수 및 방법, ③한국 입양아동에 특화된 사후관리 방안이 포함될 것을 요구하였다(「입양특례법 시행 령」 제4조). 이에 반해 우리나라가 2013년 서명한 「헤이 그 국제 아동입양 협약」에서는 협약 이행을 위해 권 한 있는 중앙당국의 지정을 요구했는데,2 당시 우리 나라의 국제입양 절차가 민간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비준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 해 이번 「국제입양법」은 「헤이그 국제 아동입양 협 약」의 내용을 반영하여 제정하였다. 나. 「국제입양법」 제정법률의 개선 내용 구체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국제입양에 보건 복지부가 중앙당국이 되어 헤이그 협약의 절차를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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