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8월호

2023. 08 vol.674 음 해에 백록담에 올랐다. 성판악 코스를 통해 올랐는데 백 록담을 불과 50미터 정도 남겨둔 마지막 순간에 체력이 소 진되어 애를 쓰다가 결국 포기했다. 거기까지 오르고서도 끝내 백록담 표식 앞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그 정도로 몸이 회복되어 버킷 리스트에 있던 백록담 오르기를 99% 달성한 셈이었다. 버킷 리스트에 담겨있던 좋아하는 공연 보 러 다니기는 지금까지 열성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평생 정치평론을 하면서 정치적 관심에 많이 갇혀 있 었다. 그러나 투병의 시간에 병실에서 밤마다 음악을 들으면 서 생각했던 것은 정치가 아니라 예술 속에 우리의 삶이 담 겨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공연들을 접하면서 예술이 우리에 게 어떤 치유의 힘과 행복을 안겨주는가를 실감하고 있다. 올해에는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제법 긴 기간 동안 자유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족 과 긴 여행을 가는 일이 다시 가능할까를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그것이 가능해졌고, 더욱이 과거보다 힘들지만 직접 여행의 모든 것들을 설계하고 예약하고, 걷 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곳저곳 누비는 여행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물론 내 버킷 리스트 가운데는 아직 실행하지 못한 것 도 적지 않다. 돌로미티 트레킹 같은 것은 몸이 그만큼 받쳐 줄까에 대한 자신감이 아직 없어서 실행하지 못한 경우다. 유럽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일도 마음은 굴뚝같지만 여러 이 줄지어 나타났다. 이전까지 간직하고 살던 그 많은 욕망과 대의명분과 주장 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이런 것들이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그것은 특별히 의도하거나 목적한 것들이 아니었고, 인생의 유한함을 자 각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새로운 인생의 길이었다. 자신의 소소한 꿈들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것들이 비켜서면서 그 아 래에 눌려 있던 자신의 본성적 꿈들이 분출되는 것 같았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고 싶어진 것들이 정말 많 았다. 인생의 새로운 기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4년여 전 마음속에 기록했던 버킷 리스트 가운데 실행에 옮긴 것들도 있 고, 그러지 못한 것들도 있다. 8개월간 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아내와 함께 간 것이 제주였다. 겨울에도 포근한 서귀 포에 숙소를 잡아 한 달 살기를 했다. ‘관광’하러 제주를 간 적은 많았지 만, 제주의 구석구석을 걸으러 간 건 처 음이어서 그 감흥은 매우 새로웠다. 아, 제주가 이렇게도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 구나 싶었다. 그때 새롭게 발견한 것은 어쩌면 제주가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기쁨이 어디서 찾아지는가에 대한 자각 이었는지 모른다. 그다음 해에는 걷는 능력이 더 회 복되어 한라산도 올랐다. 너무도 아름 다운 영실 코스의 계단들을 올랐다. 그러고는 자신감을 얻어 다시 다 살아오면서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쥐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 자신을 제대로 담고 있던 것들이 아니었다. 인생을 지탱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공장 기계에서 찍어내듯 만들었던 것들이었다.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이제라도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버킷 리스트’를 떠올렸다.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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