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라도 낼라치면 부모 마음도 모르는 불효자 가 된다. 괜찮으니 다음에 가져가라 하시지만 얼굴에 비친 서운함을 놓칠 아들도 아니다. 한바탕 실랑이 끝 에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는 비단 필자만이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 에서 이런 식의 해프닝이 일어나는 것은 한국인들의 심리 경험 방식 때문이다. 내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 을 짐작하는 이 자의성이야말로 정(情)을 가장 한국적 정서로 만드는 요인이다. 국민 과자 초코파이 광고의 카피, “말하지 않아 도 알아요”는 정의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낸다.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정이란 내가 ‘안다’고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마음이다. 주관성은 한국인 심리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이 주관성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한국적인 현상 들이 일어난다. 앞선 주제였던, 프로불편러도 벼락거지 도, 억울함도, 타인을 가족으로 인식하는 습관도 객관 적 사실과는 별개로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마 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의사소통 역시 이 주관성 위에 서 작동한다. 한국인들은 말하지 않고도 오가는 마음 을 중요하게 여긴다. 대인관계 맥락에서 한국인의 대화 는 ‘마음’을 준거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다. ‘네 마음 대로 해’,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 ‘일이 마음 같지 않다’,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등 일일이 예를 들기 가 어려울 정도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마음이 대단히 중요한 개념일 뿐 아니라 마음이라는 개념과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 하는 맥락에 대한 도식이 상당히 세분화되어 발달해 왔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인의 자기(self)-경험의 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초코파이 광고는 한국인의 ‘정(情)’이라는 감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인의 이 정의 표현은 꽤나 비언어적이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람한테 불문곡직 그냥 들이민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일방적이라 느껴질 수 있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러한 정의 표현을 버거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냥 바라보면, 음~ 마음 속에 있다는 건~” 첫 소절만 들어도 후렴까지 자동 재생되는 온 국 민이 아는 초코파이 광고의 노래 가사다. 때로는 광고 의 장면들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필자는 추운 겨울 날 아이가 말없이 내민 초코파이를 받고 미소 짓는 아 저씨(아빠?) 버전을 제일 좋아한다. 초코파이 광고는 한국인의 ‘정(情)’이라는 감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정(情)이 가장 한국적인 정서라 알려 진 이유는 감정의 방향에 있다. 다시 말해, 정은 주체 로서의 내가 다른 이에게 주고자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가 오랜만에 찾아온 손자 손녀를 먹이고 싶은 마음, 산 것보다 몇 개씩 더 덤을 얹어주는 전통시장 상인들의 씀씀이와 같은 것들이다. 한국인의 정(情), 말 안 해도 안다는 ‘주관성’에서 시작돼 그런데 이 정의 표현은 꽤나 비언어적이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람한테 불문곡직 그냥 들이민다. 받는 사 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일방적이라 느껴질 수 있는 방 식이다. 실제로 한국인 중에는 이러한 정의 표현을 버 거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장 필자만 해도 부모님 댁에 갈 때마다 챙겨주 시는 반찬이며 먹을거리들이 반갑지만은 않다. 멀리 사 는 아들이 집에 올 때마다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 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더운 여름날 차도 없이 두 시 간 이상 무겁고 냄새나는 짐을 들고 가는 것은 여간 성 가신 일이 아니다. ┃ 슬기로운 문화생활 한국인은 왜 69 2023. 08 vol.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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