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8월호

깨우쳐주신 스승이었다. 내가 선배님을 처음 뵈었던 것 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초임 발 령을 받아 임기를 마친 뒤 두 번째 근무지로 서울중앙 지방법원 민사소액과로 부임했는데, 그때 민사소액과 장이 바로 선배님이셨다. 이후 다른 부임지에서 한 번 더 함께 근무했던 적 이 있어 나에게만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 겠지만, 그래도 나는 선배님과 조금은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민사소액과에 부임했을 당시 후배 사랑이 각별했던 선배님이 여러 말씀을 일러주셨 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바로 ‘알빈 옥’의 가르침이다. “누구에게도 알랑거리지 말고, 빈정거리지도 말 고, 옥신각신 다투지 마라.” ‘알빈옥’은 위 말의 앞자만 따서 줄인 말이다. 선배님이 여러 어록 중 공무원에게 필요한 자세에 대 해 들려주시며, 직접 조어(造語)해낸 말이었다. 선배님 의 인생철학과 공직관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는 말이라 하겠다.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알빈옥’의 가르침 처음에는 궁금증 때문에 ‘알빈옥’에 관심을 가졌 지만, 어느새 공직생활을 막 시작한 내게 의미 깊은 말 로 다가왔다. 당시 어수선한 시대 상황에서 과원을 관 리해야 하는 책임자라고 한다면, “청렴해라. 친절해라. 헌신하고 봉사해라.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등의 말을 했을 것 같은데, 특별한 시대 감각을 가진 분도 아니셨 던 선배님은 왜 시대 상황에 썩 어울리지 않는 ‘알빈옥’ 을 실천하라고 했을까. 김순곤 선배의 ‘알빈옥’은 민사소액과에서 근무 하는 내내 나를 지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희 미해졌지만, 그때는 내게 선배님의 가르침이 매우 참신 하고, 남다른 인상을 남겼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제 인생의 황혼길에 접어들면서 지나간 공 직생활과 법무사로서 살아온 길을 돌이켜보며 하나씩 정리해 가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선배님 의 말씀과 가르침이 내 삶의 중요한 목표이자 가치였다 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세대가 살아온 시대 상황에서는 승진을 거 듭해야 하는 직장생활과 수많은 인생의 고비와 힘든 문턱을 수없이 넘으며, 결정권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기 보다는 윗사람이나 외부 사람들의 뜻에 따라 결정되 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또 살아 남기 위해서라면 도덕이나 양심, 철학이나 인생관 따위 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 분명 사실이었다. 속된 말 로 처, 자식, 부모 형제를 먼저 살펴야 하는 현실이 그 런 개인의 가치 체계를 용납할 리 없었다. 그래서 시류에 따라 물이나 바람처럼 그저 그렇 고 그렇게 살아갔던 것이고, 그것이 선배님이나 후배인 우리들의 삶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선배님의 혜안은 멀고 길게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하며,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의 ‘알빈옥’은 공무원이 국민에게 친절과 봉사 로 보답하되 자신의 삶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 침이었다. 공직자가 뚜렷한 공직관으로 스스로 권위를 지키려 힘쓰게 되면, 자연히 주인인 국민에게 친절해지 고, 봉사와 희생도 수반되지 않겠는가. 공직자로서 당장의 시류나 눈앞의 이해관계에 흔 들리지 말고, 스스로의 주관과 철학을 분명하게 가지 고 살아가라는 말씀이 내게는 주옥과도 같은 말씀이 었다. 무심한 세월은 결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선배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셨다. 다시는 볼 수가 없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잘 가시라는 인사도, 국화꽃 한 송 이도 놓아 드리지 못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한번 뵙고 싶다. 안타깝고, 미안하고 감사하다. 선배님을 진정한 선배님으로, 올곧은 스승으로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며, ‘알빈옥’의 가르침을 잊지 않 겠다. 이 자리를 빌려 손 모아 선배님의 명복을 빈다. 김순곤 선배님, 편히 영면하십시오! 73 2023. 08 vol.674 ┃ 슬기로운 문화생활 문화路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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