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10월호

한국사회의 혐오는 일반적인 혐오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회 갈등에서 혐오는 보통 주류집단(강자)에서 문화적으로 학습된 소수집단(약자)에 대한 혐오가 차별의 형태로 드러난다. 반면, 한국에서 나타나는 혐오는 성소수자나 타 인종에 대한 전형적 혐오도 있지만, 세대와 계층, 성별, 정치적 성향, 아이 키우는 부모 등 그 대상과 방향이 천차만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정서를 생물학적 반응으로 보는 입장에 따르면, 혐 오는 썩은 음식을 먹었을 때 혹은 감염된 상처나 독충 등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거부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자 로진은, 혐오가 ‘오염물의 체내화’라는 관념에 초점을 둔 복잡한 인지적 내용을 지니고 있다 고 주장한다. 역겨운 대상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올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 (예, 질병, 감염, 사망 등)을 상상함으로써 혐오가 구체 화된다는 것이다. 즉, 혐오가 강렬한 이유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의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 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법철학자 밀러는 혐오의 핵심 적 관념을 “전염에 대한 생각”이라 보았다. 역겨운 물 질이 내 몸에 들어와서 나쁜 결과를 일으킬지 모른다 는 두려움이 혐오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한편, 독일의 문화학자 메닝하우스는 혐오를 타 인에 대한 태도로 확장시킨다. 즉, 혐오란 ‘절대 타인과 동화되기 싫다’는 생각과 연합된 감정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구분하려는 욕구를 가지기 때문에 너무나 이질적인, 즉 자신과 너무나 다른 타인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들과 가까워지거 나 동화되기 싫다는 생각에서 나아가 그들이 자신을 오 염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는 인간과 집단의 생존에 일정 정도 이상의 역할을 해 왔다. 여러 법철학자들이 지적했듯 이, 인간의 윤리관은 혐오라는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이들에게 우리 는 역겨움을 드러낸다. 혐오는 또한 내 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분하고 집단 내의 연대감을 높이는 데 유용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한국 사회는 혐오와 갈등으로 가 득 찬 것 같다. 진보와 보수, 노와 사, 부자와 빈자, 노인 과 젊은이, 남과 여 등 한국인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 든 대상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이상하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쉽게 ‘우리’ 가 되고, 또 척하면 척,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국 사회에 넘쳐나는 이 갈등은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인들의 심리적 습관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현상은 다른 차원에서 이 해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정이 많다는데 한국사회에는 왜 갈등이 넘쳐나고 소외된 사람들 천지냐는 식의 접 근은,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하나가 만나는데 왜 물(H2O)이라는 수소, 산소의 속성과는 전혀 다른 물질 이 되느냐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인들의 기본적인 심리적 속성들, 즉 높은 자기가치감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 는 주체성 자기,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방 식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문화적 현상으로 이어지 는 것일까. 이번 달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 현상 을 통해 한국인들의 마음과 행동을 들여다보자. 혐오, 절대 타인과 동화되기 싫다는 생각과 연합된 감정 우리가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은 혐오라는 감정 자 체다. 혐오는 소위 기본 정서 중 하나다. 두려움, 슬픔, 기쁨, 놀람, 분노 등의 기본 정서 중에서도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감정이 바로 혐오다. ┃ 슬기로운 문화생활 한국인은 왜 73 2023. 10 vol.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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