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10월호

기피·위험과는 다른 혐오의 속성들 이러한 일차적인 기능들 외에도, 혐오는 인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면서 몇 가지의 독특한 속성을 갖 게 되었다. 일단, 혐오는 기피와 다르다. 혐오는 대상에 대한 당사자의 인식에 따라 혐오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피와 구분된다. 사람들에게 치즈 냄새를 맡게 한 후, 한 집단에는 그것이 치즈 냄새라고 말해주고, 다른 집단에는 똥 냄 새라고 알려주었을 때, 치즈 냄새를 맡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똥 냄새라고 생각한 사람은 불 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혐오 반응을 일으킨 것은 냄 새라는 물리적 자극이 아니라 사람들이 냄새에 대해 가진 인식인 것이다. 또한 혐오는 위험과도 다르다. 독버섯 같은 위험 한 대상은 그것을 먹지만 않는다면 같이 있어도 아무 렇지도 않지만, 혐오스러운 대상은 모든 위험이 제거되 어도 여전히 혐오스럽다. 아무리 철저히 소독하고 영양 분만 남겼다 하더라도 똥으로 만든 대체 음식을 먹을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감각이나 지각된 위험과는 별개로 대 상에 대한 인식 자체로 혐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혐오는 학습될 수 있다. 특정 대상에 대한 인식은 대개 그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깊 이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대개는 교육과 학습을 통해 대대로 전승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은 최소 일정한 언어 능력을 획득한 이후 혐오를 경험할 수 있다. 적어도 세 살 이전의 유아에게는 혐오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쓴맛 등에 대한 불호는 나타나지만, 이 나이에서의 혐오는 기피나 위험과 구분 되지 않는다. 혐오는 네 살쯤 이후로 자리잡게 되는데, 네 살이 되면 곧바로 완전한 혐오를 갖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신호에 반응하면서 먼저 기피를 배우게 되며, 부모와 다른 사람의 혐오를 반복해서 경험한 후에 완전한 혐 오를 갖게 된다고 한다. 즉, 혐오란 부모와 해당 사회 구성원들로부터의 사회적 학습의 결과로서, 사회의 복잡한 연계망을 거 쳐 다른 대상에게로 확장된다. 특정 대상에 대한 금기 나 행위 양식을 포함하는 일종의 문화적 관념 또는 문 화적 태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타 집단에 대한 혐오는 차별로 이어지는 경향을 갖게 된다. 법철학자 누스바움은 사람들이 수 치심을 느끼면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다른 이 들에 대한 폄하와 공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2차 대전 독일의 유대인 혐오나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조선인 혐오가 이에 해당한다. 1차 대전 패전 이후 곤궁한 독일의 상황과 대지진 직후 일본인들의 좌절감이 혐오의 대상이던 유태인과 조선인들에게 표 출된 것이다. 일반적인 혐오와는 다른, 한국사회의 혐오 현상 그런데 이러한 혐오의 속성들로 미루어 한국사회 의 혐오는 일반적인 혐오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 다. 사회 갈등에서 혐오는 보통 주류집단(강자)에서 문 화적으로 학습된 소수집단(약자)에 대한 혐오가 차별 의 형태로 드러난다. 반면, 한국에서 나타나는 혐오는 성 소수자나 타 인종 집단에 대한 혐오처럼 전형적 혐오도 있지만, 세 대와 계층, 성별, 정치적 성향, 아이 키우는 부모 등 그 74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