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스바움은 혐오는 도피와 방기로 이어지기 쉽지만, 분노는 저항과 건설적 참여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 급격하게 확산되는 혐오, 아니 분노는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저항과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참여의 의지로 바뀔 수 있다. 대상과 방향이 천차만별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개중에 는 상대적 소수집단이 주류집단에 대해 분출하는 혐 오도 적지 않다. 한국사회의 ‘혐오’ 현상을 다른 각도에 서 지켜보아야 할 이유다. 또한 혐오가 드러나는 방식도 차별보다는 상대방 에 대한 공격에 가깝다. 역사적으로 집단 간 혐오로 촉 발된 사건들은 상대 집단에 대한 격리, 무차별 공격, 학 살의 형태를 띠었다. 물론 한국의 혐오 현상에도 ‘노키 즈·노시니어 존’과 같은 격리나 여성과 노인들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 등의 모습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보다 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관련 기사의 댓글 등에서 상대 집단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누스바움에 따르면, 혐오와 분노는 매우 다른 종 류의 감정이다. 분노 역시 인간의 기본 정서 중 하나로, 목표의 좌절이나 내 영역이나 소유에 대한 공격에 대해 촉발되는 감정이다. 다른 기본 정서들과 마찬가지로 분 노 역시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기능을 한다. 내 영역과 소유를 노리는 적을 쫓아내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다. 혐오가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불쾌한 대상에 대한 거부를 나타낸다면, 분노는 부당함 또는 위해에 대한 생각이 주를 이룬다. 다시 말해, 내게 부당한 일이 행해졌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감정인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한국의 문화적 정서가 있지 않 은가. 그렇다. 바로 ‘억울’이다. ‘화병’으로 지칭되는 한 국의 문화적 정신병리 증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 억울함은 ‘부당함에 대한 분노’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세대·계층·성별 등 한국사회의 주된 혐오 현 상들은 상대방이 가진 ‘기득권 또는 특권’에 대한 분노 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즉, 한국인들은 내가 못 가진 것을 너희들이 ‘부당하게’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분노는 건설적 참여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혐오든, 분노든, 결국은 사회적 갈등과 차별을 야 기하는 감정인 것만은 틀림없다. 사람들은 혐오와 분 노를 통해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통제감’을 획득해 왔다. 그러나 혐오와 분노의 심리적 과정은 분명 다르다. 혐오는 타인들을 멸시의 대상으로 놓고 차별함으로써, 분노는 내가 부당하게 당했다는 생각으로 타인을 공격 함으로써 잃어버린 통제력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분노로 가득 찬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희망을 발 견할 수 있는 지점이 여기다. 누스바움은 혐오는 도피 와 방기로 이어지기 쉽지만, 분노는 저항과 건설적 참 여의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혐오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혐오의 목적은 상대가 사라지거나 최소한 격리되어 나 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만드는 데 있다. 물론 분노도 상대를 공격해 없애거나 상대가 가진 것을 빼앗는 결과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분노는 혐오 처럼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 대 또는 상황의 변화를 촉구한다. 내게 부당한 일을 겪 게 한 대상·사회·시스템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결국 내가 겪은 부당함을 해결할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사회에서 급격하게 확산 되는 혐오, 아니 분노는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저항과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참여의 의지로 바뀔 수 있 다. 관건은 그러한 분노가 향할 방향에 있다. 방향 없는 분노는 파괴와 무질서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인들은 서로에 대한 이 끝없는 분노를 그치고 해법을 찾아갈 수 있을까. ┃ 슬기로운 문화생활 한국인은 왜 75 2023. 10 vol.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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