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12월호

2023. 12 vol.678 이 다해 죽음을 앞두고서야 문지기에게 물어본다. “여러 해 동안 나 이외에는 아무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한 사람이 없으니 어찌 된 일이냐?”고. 문지기는 임종이 다가온 시골 사람에게 이렇게 알려준다. “여기서는 당신 말고는 아무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소.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정해진 것이기 때문 이지. 나는 이제 가서 문을 닫아야겠소.” 시골 사람이 진작에 그 질문을 했거나, 아니면 적극적 으로 나섰다면 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지기의 위세에 겁먹어 문 앞에서 망설이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결국 들어가지 못한 채 죽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문지기들이 있다. 그 문지기는 권력일 수 도 있고, 때로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일 수도 있으며, 그 가치의 이행을 나에게 요구하는 세상 사람들일 수도 있 다. 하지만 나의 삶이 그 문지기들의 허락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다. 문지기들에게 나의 운명을 위 탁할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책임지는 삶의 주체다. 그러니 내가 원래 가졌던 얼굴이 비루하게 일그러지지 않도록 지 키면서 세상을 살아갈 일이다. 그러니 그들로부터의 평판에 매달리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모방하는 삶을 살아 간다. 영웅을 모방하고, 성공한 사람을 모방하고, 동료들을 모방한다. 가치도 생각도 모습도, 살아가는 방식까지도, 사회는 그들의 삶을 따라 살라고 가르 쳐왔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좌 우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진정으 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삶 이다. 나만의 색깔이 도는 내 얼굴을 가 지고. 삶의 주인은 나, 스스로 책임지는 삶의 주체 『법 앞에서』는 카프카의 단편소설 이다. 법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지기 의 제지에 위축되어 그 앞에서 몇 년을 기다리다 죽어간 시골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문지기에게 법 안으 로 들여보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자, 문지기는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안 된 다”고 모호한 대답을 한다. 저지하면서 도 유혹하는 이중성이다. 시골 사람은 들어가겠다고 나서지 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언젠가는 들어가 게 될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도 못한 다. 그래서 여러 해를 기다리다가 기력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 법으로 본 세상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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