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법무사 12월호

언제나 가을이 깊어지면 시골길 곳곳마다 감이 먹음직스럽게 익어간다. 올 해도 깊어가는 가을의 어느 날인가 지리산 밑 산골 동네에 살고 있던 친구네 집을 찾아가니 앞뒤 할 것 없이 오래된 감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손만 펼치면 주렁주렁 매달린 감 홍시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이런 감나무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종회 때 담임선생이 같은 반 친구 김창수(가명)를 불러 세우더니, 대뜸 “누가 곶감 을 주더냐”고 큰 소리로 묻는 것이다. 뜬금없는 선생님의 추궁에 우리는 일제히 그 친구를 쳐다보았고, 그 친구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가…”라고 대답하였다. 그 광경이 그리 우스웠던지 뒤쪽에서 아이들이 컥컥 소리를 내며 웃었는데, 한편으론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그것도 큰 소리로 그렇게 확인을 해야 하는가 하고 외려 민망스럽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그 친구는 이름 ‘창수’보다 ‘곶감’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고, 아이들은 평소에도 창수를 “꽃감, 꽃감” 하고 불렀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대학 진학을 하여 뿔뿔이 헤어졌으나, 그때도 지금도 친구들은 창수를 그 이름 대신 ‘꽃감’으로 부르며, 그 의 안부를 묻곤 하였다. 꽃감 김창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었다. 전공을 살려 외국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그때도 ‘곶감’이라는 별명은 늘 붙어 다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꽃감 창수는 불치의 병에 걸려 나이 육십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6년이 흐른 지금도 친구들은 그의 이름 대신 “꽃감”이라 부른다. 그 시절엔 창수도 나도 ‘곶감’이란 별명을 퍽이나 부끄러워하고 민망스러워했으나 지금까지 그 이름 대신 별명을 기억하고, 떠나간 친구를 회상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이름 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이 별명이 아닌가 싶다. 정하택 ● 법무사(서울중앙회) 곶감 유감 82 문화路,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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