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것은, 그가 올라이이고 어부이며 마르타와 결혼 했고 요한네스의 아들이며 이제, 언제라도, 조그만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17쪽) 『아침 그리고 저녁』은 1부와 2부로 간결하게 이야 기를 구성한다. 1부는 노르웨이 한적한 해안 마을의 한 살림집에서 산모가 출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늙은 산파의 움직임, 고통스러운 산모의 비명, 불안과 기대에 찬 남자의 서성거림과 내적 독백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올라이와 마르타의 사내아이, 어린 요한네 스가 태어나 인생의 아침을 맞이하며 할아버지처럼 요 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2부는 그사이 세월이 흘러 일곱 아이의 아버지이 자 어부로 살아가는 요한네스가 평범하면서도 낯선 일 상에서 죽음을 깨닫는 저녁을 담고 있다. 그는 아내도 친구도 떠나보내고 근처에 사는 막내딸을 의지하며 적 막하고 고독한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여느 날처럼 하루 를 막 시작하는 요한네스의 눈에 사물들, 풍경이 어쩐 지 너무 달라 보인다. “상상해 보라, 세탁기가 생기기 전에 에르나가 저 통을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저 안에다 얼마나 많은 빨래를 했는지, 그래 결코 적지 않은 빨래였다, 그리고 이제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 다, 그리고 저 위 창고 다락에는, 오랜 세월 모인 많은 물건이 있다,” (43쪽) 요한네스는 여느 아침처럼 혼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모든 게 평소와 다 를 바 없는데 전혀 다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사 랑하는 아내 에르나가 늘 앉던 식탁 맞은편을 바라본 다. 지금은 빈 의자인데도 어쩐지 그녀가 앉아 있는 것 만 같다. 어떤 예고도 없이 잠을 자다가 먼저 떠나버린 에르 나를 생각하며 요한네스는 오랜만에 창고를 들여다본 다. 에르나는 가고 없는데 그곳에 빨래통은 여전히 남 아 있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고 그는 독백한 다. 사물을 통해 아내의 흔적을 확인하며 존재의 의미 를 되새긴다. 사람이 사물을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살아가지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건 사람이고 사물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그런 것이다. 남겨진 사물들, 풍경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가 서서 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이다. 삶과 죽음, 마침표 없는 쉼표의 연장선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평범한 일상에 담 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여느 소설과 달 리 큰 사건도 위대한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돈과 명 예, 권력, 사람들 간의 다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물만이 존재하는 무자극 무공해 소설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명료한 언어로 리듬감 있게 써 내려가, 읽는 이의 침묵을 깨고 생각을 끌어낸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으며 잠시 휴식하기 위한 쉼표만을 사용해, 삶과 죽 음의 과정을 하나의 끝나지 않은 문장 속에 담아낸다.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은 마침표 없는 쉼표의 연장 선으로 겹치고 스며든다.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 을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로 이야기하며, 존재 이유와 의미를 깨닫게 한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사람은 가 고 사물은 남는다’라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WRITER 김민숙 인문학 작가 85 2024. 01. January Vol.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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