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내는 ‘베두타(veduta) 기법’의 대가였다. 현재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소장 중인 카날 레토의 「대운하에서의 레가타(A Regatta on the Grand Canal」(1740년 경)는 이제 막 봄에 접어든 베 네치아의 축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해마다 2월이 되면 가톨릭 국가에서는 카니발 축제가 열린다. 40일간의 금식이 시작되는 사순절 직전까지 남녀노소 모두 축제를 즐기며 질펀하게 먹고 마신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가면축제는 지금 도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2월 2일 가톨릭 축일에 맞 추어 ‘레가타(보트 경주)’도 개최되어 더욱더 그 화 려한 명성을 뽐냈다. 그림에서 보이는 “볼타 디 카날[그랜드 카날(대 운하)의 첫 구간]”은 곡선구간이라 추월에 용이하지 만, 자칫하면 보트가 전복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 까 그림의 오른쪽에 보이는 두 대의 곤돌라가 부딪칠 듯이 가깝게 붙어 경쟁 중이다. 넘어질 듯 위태롭지 만,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노를 젓는다. 그림 왼편에는 베네치아 카니발을 상징하는 ‘바우타(bauta)’라 불리는 흰색 가면, 검은 망토, 그 리고 삼각모자를 쓴 구경꾼들이 서 있다. 그 뒤편의 화려한 금빛 장식으로 치장된 건물 은 우승자를 축하하는 시상식을 열기 위해 임시로 지은 수상정자다. 입구에 걸린 총독 알비제 피사니 의 문장(紋章)을 통해 경기가 열렸던 시기, 즉 그림 이 그려진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그가 베네치아를 이끌던 1735년~1741년 중 카날레토의 전성기가 겹 치는 1740년쯤에 그려졌으리라. 동서양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궁전들 의 테라스에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형형색색의 깃 발이 걸려있다. 응원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거리 와 테라스는 발 디딜 틈도 없다. 부유한 이들은 이 런 혼잡함을 피해 깃털과 금박의 다양한 동물 조각 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비소네(bissone)’ 보트 위에 서 푹신한 비단 쿠션에 기댄 채로 경주를 즐긴다. 동양적인 통바지를 입은 뱃사공들은 노를 내려 놓고 손을 흔들며 선수들을 응원한다. 봄바람을 타 고 그림 속 인물들의 뜨거운 응원 열기와 열정이 그림 밖까지 전 해지는 듯하다. 비발디의 「봄」, 카날레토가 ‘레가타’를 그릴 때 듣지 않았을까 이렇게 흥겨운 축제라면 음악이 빠질 수 없다. 베네치아인들 에게는 붉은 머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n Vivaldi, 1678.3.4.~1741.7.28.)가 있지 않은가? 그가 작곡한 바이올 린 협주곡 『사계』는 우리 일상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를 유쾌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풀어낸 『사계』는 비발디가 한창 전성기일 때 발표한 작품집 『화성과 창의의 시도』 (1725년) 중 일부다. 비발디는 오랫동안 고아원인 피에타 학교의 음악교사로 일했고, 그의 음악 대부분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 다. 어째서 비발디가 새소리, 바람소리는 물론이고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서 겨울의 눈보라까지 쉽고 재밌게 음악으로 풀어내었는 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비발디가 이끄는 고아 소녀들로 구성된 예술단은 유럽 전역 에서 명성이 자자했고, 『사계』를 발표함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위 상도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늘 봄일 수는 없듯이 그의 인생에도 혹독한 겨울이 찾아온다. 애석하게도 1740년경 비발디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오스 트리아의 빈에서 가난과 병마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그의 생명의 불꽃은 꺼져버리고 만다. 카날레토 역시 비발디의 음악을 들었을 것이다. 거리 어디선 가 연주되는 「봄」을 들으며 열심히 붓질을 하지 않았을까?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 역시 열정적으로 ‘레가타’를 응원하는 그림 속 군중의 일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연 주되는 「봄」의 선율이 따뜻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듯도 하다. 예술을 통해 지나가 버린 시간 속 삶에 귀를 기울이고, 그 시대의 열정과 재미를 느끼는 일은 늘 즐겁다. WRITER 최희은 미술·음악 분야 저술가 · 번역가 77 2024. 02. February Vol.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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