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이경록 법무사(강원회) · 본지 편집위원 들었다 놨다 하는 그의 열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었다. 그는 최근 건강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좋아하던 술 도 끊고, 계단 오르기를 꾸준히 했더니 살이 많이 빠지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한다. 성년후견본부를 창립하던 2011년, 50대 초반이었던 그도 어느덧 초로의 신사가 되었다. 본부와 함께한 시간 동 안 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본부 설립을 준비하던 201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제1회 세계성년후견대회에 초청되어 개막연설을 했던 것 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는 우리나라에서 성년후견 제도가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일본 측의 배려로 세계인들 을 상대로 개막연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1회 세계대회에서는 역사적인 ‘요코하마 선언’이 발 표되었다. 피후견인의 잔존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의사결 정 지원제도’로서의 성년후견제도의 대원칙을 담은 선언이 다. 그의 개막연설은 세계인들을 향해 우리나라가 요코하 마 선언의 대원칙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우리 후견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가나 지방정부 가 적극적으로 나서 제도 홍보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법 제도적 개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은 ‘후견청’의 설립을 검 토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앉으나 서나 꼬리를 무는 후견에 대한 생각들. 법무사 최인수가 애정하는 삶이 거기에 있었다. 는 법무사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중요해 보이는데, 아직 은 성년후견 사건 수나 전문가 성년후견인 선임비율도 적 고, 선임이 된다 해도 피후견인 가족 간 불화나 적은 보수 등으로 업무가 어렵다는 인식이 많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다수 사건은 가족후견인이 선 임되고, 전문가 후견인은 가족 구성원 간 불화가 심하거나 후견업무의 난이도가 높은 10% 정도의 사건들에서 주로 선임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일본의 경우도 제도 초기에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문가 후견인이 후견사건의 80% 정도를 담당하고 있거든요.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일 본이나 다른 선진국들처럼 전문가 후견인 선임이 일반적인 상황으로 바뀌어가면서 점차 안정될 것으로 봅니다.” 최 이사장은 현재의 어려움으로 법무사의 미래에 중 요한 성년후견 업무를 포기하거나 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했다. “무슨 일이든 초기에는 어렵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경험 이 쌓이다 보면 수월하다고 느끼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 본 부에는 13년간 축적된 성년후견 업무에 대한 많은 노하우 가 있고, 다양한 교육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본부의 도움을 통해 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해갈 수 있을 겁니다.” 제1회 세계성년후견대회 개막연설, 가장 기억에 남아 최 이사장은 달변가다. 간간이 농을 섞어가며 청자를 ▶ 2011.6.17.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창립총회 진행 장면 ▼ 2010.10.2. 제1회 세계성년후견대회 개막연설 장면 53 2024. 03. March Vol.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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