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3월호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 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 봐야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 모함, 불성실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 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 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152쪽)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인 어 려움을 겪지 않았다. 평생 학자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 아버지와 한동안 증오하는 관계가 된다. 갑작스레 아버 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비통과 절망에 빠져 극도로 우울 한 날들을 보낸다. 뒤늦게 학문의 길로 들어서면서 자신만의 체험을 철학으로 승화시킨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 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는 그의 아포리즘은 삶 속에서 체화된 것이다. 실수 뒤엔 항상 우연이 따라오기 때문에 “실수를 성공으로 바꿔줄지도 모르고, 완벽한 계획을 뿌 리부터 틀어지게 만들어 버릴”(151쪽)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우연히 생긴 비극에 자기 징계를 반복하며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일침이 쓴 약으로 다가온다. 상처 입은 가슴만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상처 입은 가슴만이 발견할 수 있다. 그 벅 찬 기쁨을 위해 아름다움은 저렇듯 신비한 모습으로 나 의 이마 위를 떠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생에서 동요 를 느낄 때가 있다. 항구를 출발한 배는 필연적으로 파 도를 거슬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남은 동요 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 다.” (181~182쪽) 만약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고, 모두가 부유해지고, 늙지 않고, 사랑하게 되고, 병들지 않는다면”(120쪽) 어 떻게 될까. 쇼펜하우어는 인류의 모든 구성원이 행복의 절정을 맛본 후에 남는 건 ‘권태’뿐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권태로운 인간은 행복한가?”(121쪽). 그는 아픔을 모르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고, 패배와 좌절 없이 행복은 우리를 방문하지 않으며, 시련의 눈물 없이 웃음 에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고 답한다. 나아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픔”이라는 단어를 건넨다. 아픔을 통해 배우지 않는 모든 것은 거짓이며, “아픔으로 인하여 더 성숙해지리 라”(181쪽)는 것이다. 그의 문답을 통해 그다지 불행할 것 도, 불편해할 것도 없는 인생 그 자체를 깨닫는다. 흔들 림 속에 상처 입으며 아름다움으로 거듭나는 자신의 인 생을 보듬게 된다. 쇼펜하우어를 탐구했던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에 대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처음 으로 이야기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쇼펜하우어는 1만 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걸로 알려져 있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진다고 전하 는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0년 이 지난 지금까지도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공감과 위 로를 준다. 『당신은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는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의 집약판으로 볼 수 있다. 책 속에 담긴 삶의 통찰과 인생의 조언은 쇼펜하우어의 “인생 그 자체를 텍스트 삼아 삶의 고통을 철학으로 승화”(6쪽)시 킨 것이다. 이렇게 절망에서 출발한 그의 철학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마주하고 희망으로 나아가는 힘을 준다.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힘듦과 고통 속에 흔들리고 있다면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산책하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 볼 만하다. WRITER 김민숙 인문학 작가 77 2024. 03. March Vol.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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