었던 터라 약간의 각오는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식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는 진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법원 국장 부임 2달 전 간암 발병 나는 2021년 1월 1일자로 수원지방법원 사무국장으로 부임하였다.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법원에서 일하게 되 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불과 두 달 전에 간암이 발병 했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솔직히 내가 체감하는 나의 건강 상태는 좋았다. 왜냐하면 그 얼마 전에 자전거로 제주도를 3박4일 일주 라이딩을 해서 기분이 매우 고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것도 몸에서 별다른 증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강은 결코 자만할 일이 아니다. 특히 ‘침묵의 장기’라 는 간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사 실을 우리 동료 법무사님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식 수술을 받기 1주일 전까지 법원장님과 법원 구성 원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유인즉, 이식 수술이란 것이 변수가 매우 많아서 언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무국장의 장기 병가에 따른 행정적인 조치는 미리 해 두었다. 대법원장님의 휴직 인사 발령을 받기까지 약간의 에피 소드가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장기 이식을 받으려면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먼저, 장기 공여자 부부와 수증자 부부가 해당 병원의 장기이식센터에서 함께 교육을 받은 후 서약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이식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온갖 종류 의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나의 경우는 공여자의 혈액형과 내 혈액형이 달라서 특히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이식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면, 공여자와 수증자 모두 병원 내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아마 장기매매의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하는 절차인 것 같다. 내 평생 이렇게 까다로운 면접 심사는 처음 겪었다.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면, 병원에서는 국립장기조직혈 액관리원에 이식수술 허가신청을 내고, 관리원의 허가가 떨 어지면 3개월 내 수술해야만 한다. 이 기간을 어기면 처음부 터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 어찌 보면 수술 받는 것만큼 이나 힘든 일이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 나는 이 어려운 절차를 모두 통과하고, 수술일 일주일 전 입원해 면역체계 이상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혈소판 감소 처치 시술을 두 차례 받았다. 목 부위에 있는 경동맥에 굵은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4시간가량 체내의 혈액을 빼낸 다음 다시 주입하는 과정이다. 수술 당일은 하루가 정말 길었다. 병실 내에서 연락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사람을 무척이나 긴장하게 한다. 드디어 오후 5시 무렵 연락이 왔다. 공여자인 목사님은 이미 2시간 전에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수술 대기실에 서 30여 분간 기다리다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마취를 담당하는 의사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너무 걱정 하지 말라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 병원에서는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한 환자가 없으며, 깨어나서 퇴원하지 못한 환자가 없습니다.” 빙그레 웃었다. 그때는 내게 가벼운 웃음이 나올 만큼의 여유가 아직 남아 있었다. 수술실의 모습은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것과 유사하였 다. 마취제를 주입하는 동안 심호흡하면서 10까지 세라는 음 성을 듣고서 1, 2, 3까지 센 후부터는 기억이 없다. 희미한 음 성을 듣고서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새벽 1시 무렵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어느 정도 의식이 회복될 무렵,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아픔은 목 깊숙 이 꽂아 놓은 산소 주입 호스였다. 인위적으로 환자가 이 호 스를 뽑지 못하도록 내 두 손은 이미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자가 호흡을 8시간 이상 해야만 쪼그라든 폐를 펼 수 있 으며, 이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살아생전에 심각한 73 2024. 06. June Vol. 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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