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7월호

WRITER 이경록 법무사(강원회)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가끔은 시간이 촉박한 사건도 수 임해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술계의 권익을 위해서도 일하고 싶다 이제 8월이면 법무사 배지를 단 지 1년. 막상 법무사가 되고 보니 업계 상황도 어렵고, 여러 힘겨운 점이 많을 텐 데 혹시라도 음악을 접고 법무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 었을까? 그는 “현재까지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현재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상황에는 의문이 있다는 의미인 걸까. 필자의 괜한 노파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선명 한 화법의 김 법무사가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똑 부러지는 김 법무사는 처음으로 법인을 설립했던 날의 설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법무사가 의료인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생명을 다루 는 것은 아니지만, 법무사의 법인 설립은 법인을 법 안에서 살아 숨 쉬게 하여 자연인과 함께 권리·의무의 주체로 만드 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법인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법인이 존재하고 법률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잖 아요. 마치 음악처럼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도 행복했지만, 법적 주체를 설립했던 날이 법무사가 되고 가 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었어요.” 역시 예술가의 시선은 다르다 싶다. 음표 위의 선율을 떠올리듯 법인등기부에서 살아있는 법인을 상상한다. 김 법무사는 앞으로 예술가와 예술계의 권익을 위해서도 일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아직도 젊은 예술가들이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경우 가 있다고 들었어요. 한 분야에만 오래 있었던 예술가들에 게 계약서 작성이나 검토 등 법률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 닙니다. 그들과 그들의 예술 활동, 나아가 건전한 한국 예술 계에 이바지하는 법무사가 되고 싶어요.” 꿈 역시 무척이나 야무지기만한 김 법무사님의 앞날 에 늘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 “음악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베를린 필하 모니 등의 무대에서 연주했던 기억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세계적인 지휘자나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유명 연주자와 한 무대에서 연주했던 기억도 그렇고요. 특히 베를린 현대 미술관에서 21세기 현대음악가의 실험적인 곡을 연주했던 공연은 제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법무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놀란 가족들의 반응 차이콥스키는 아버지의 뜻을 좇아 법률가가 되었다는 데, 김 법무사가 법무사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 님과 가족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더블베이스와 함께 성 장해온 그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들에게는 무척 뜻 밖의 소식이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모두 놀랐죠. 특히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 셨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보다 실기에 전념했고, 이후 10 년간 외국유학을 했는데 그 어렵다는 법무사시험을 잘 해 나갈 수 있겠냐고 말이죠. 그래도 같이 음악을 했다가 저보 다 일찍 다른 길로 갔던 제 동생이 무조건적으로 저를 응원 해 주었고, 제 친구들도 제 결정을 믿어주고, 많은 용기를 북 돋아 주었습니다.” 그는 독일어 강사를 하면서 법무사시험 공부를 시작했 는데, 처음 학원에서 들었던 「민사집행법」 강의가 마치 외계 어를 듣는 거처럼 낯설어 무척 당황했단다. 그러나 내가 힘들면 누구나 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 며, 출퇴근의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이를 악물고 수험생 시절을 버텨냈다. 사실 법무사시험 공부나 악기 연주는 끈기와 인내심, 집중력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든 영역이다. 무조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합격한다는 말이 있듯이. 다행히 그는 3년의 노력 끝에 법무사시험에 합격했다. “수험생 때는 법무사가 되는 것만 생각했지, 법무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개업을 하고 보 니 업무를 신속하면서도 잘 해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아 재 미도 있지만, 한편 부담도 있습니다. 의뢰인들은 항상 빠른 57 2024. 07. July Vol.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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