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7월호

작가’로 평가받는다.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 지는 않은 법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시간에 박차 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 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 지기도 한다.”(11-12쪽) 이 소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웹스터)이 노 년이 되어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웹스터는 학창 시절 단짝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고, 대학생이 되어 여자친 구 ‘베로니카’와 사귀다가 성적 불만과 계층 차이로 이별한 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짝 친구였던 에이드리언에게 베 로니카와 사귄다는 편지를 받고, 그 후 에이드리언이 자살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아무도 그 자살의 이유를 알 지 못한 채,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노년이 된 그는 “더디게 하는 감정”과 가끔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 껴지기도”(12쪽) 하는 시간 속에서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웹스터는 기억하지 못했던 젊은 날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자신이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 지가 엄청난 파국을 불러왔음을 알게 되고, 그 실마리를 찾아간다. 그가 기억하는 것과 “실제로 본 것”(11쪽) 사이에 는 어떤 진실이 존재하는 걸까. 기억은 얼마나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인가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 게 내가 넉살 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 다는 것을.”(101쪽) 학창 시절 웹스터와 친구들은 적당한 허세와 비딱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해 마지막 역사 시간에 조 헌트 선생님이 “그 모든 세기를 돌아보며 결론을 도출해 보라” 고 말하자, 웹스터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라고 넉 살 좋게 단언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된 그는 지나 온 시간의 퍼즐 조각을 맞추며 불편한 진실에 뒤늦은 후회 를 한다. 인생은 죽는 날까지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웹스터는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에게 받은 상처 만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그들의 삶에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는 알지 못 한다. 그들의 행적을 좇아가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그의 여 정을 통해 개개인의 기억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 인가, 돌아보게 한다. 그의 말처럼 지나온 역사는 “살아남 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까 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이 듦, 기억, 후회, 윤리를 파고드는 심리스 릴러 소설이다.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세련된 문체와 풍자 속에서 재미와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짧은 분량의 소설인데도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느 껴지는 긴장감과 예기치 못한 결말이 책을 바로 떠나보낼 수 없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물망처럼 연결된 관계 속에서 각 자의 기억이 갖는 한계와 왜곡 등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의 인생과 우리의 인생이 겹친다. 특별히 아쉽거나 부족함 없 이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한 남자가 자신의 지나온 역사를 회고하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우리의 삶과 많 이 닮았다. ‘당신의 더뎌진 감정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 껴지는 기억은 괜찮은가요?’라고 되묻는 것 같다. WRITER 김민숙 인문학 작가 77 2024. 07. July Vol.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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