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9월호

WRITER 양상승 법무사(충북회) 있게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기독교 조물주 창조설, 학창시절 침팬지 진화설만 믿고 있던 내게 어류진화설은 황당한 학설이었으나, 영상물 시청 후 어류의 생활터전인 바닷속 환경과, 태아가 떠다니는 태반 속 양수의 환경이 서로 유사하고, 염분 농도 또한 거의 일치 한다는 학설 등을 근거로 ‘어류진화설’을 어느 정도 믿게 되 었다. 현대 학자들도 상당수 이 학설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위 다큐멘터리 ‘어류상륙작전’ 편에서 인류조상인 ‘익티 오스테가’ 어류가 오랜 바다생활을 끝내고 육지로 힘찬 첫걸 음을 내딛던 장면은 오랜 시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흥분과 가 슴 벅찬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 여행 중 ‘보봉호수’ 초입에서 네발 달린 어 류를 발견하고,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중국인 들이 ‘아기고기’라 칭하는 그 어류는 조상 ‘익티오스테가’를 따라 육지에 오른 뒤 진화를 멈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했다. 바닷속 장가계 바위 주변을 맴돌던 ‘익티오스테가’는 고 향이 육지로 사라진 것을 알고 뒤따라 육지로 올라와 인간으 로 진화한 뒤, 그 회귀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지금도 끝없이 장가계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량(張良)’의 향기를 찾아 중국 역사상 300년을 넘긴 왕조가 전무한 반면, 유방의 한나라는 전한 후한 400년간 지속된 유일한 장수왕조로서 중국인들은 진정한 통일국가를 시황제의 진나라 대신 유방 의 한나라로 여기고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순수혈통으로 자부하는 한족(漢族)은 한나라 후예라는 의미다. 유방의 한나라가 상대했던 항우의 초나라는 너무 큰 장 벽이었다. 패현의 시골 건달이었던 ‘흙수저’ 유방에 비해 항 우는 대단한 ‘금수저’ 가문인 명장 항연, 항량, 항백 등 명문 귀족 후예인 데다가 70여 회의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는 전 투의 신이었고, 초기 군사력에 있어서도 유방은 항우에 비해 1:7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항우와의 대결은 골리앗과의 싸움이었으나,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 가던 한나라는 초한 대전의 최후 결투 인 ‘해하 전투’(垓下戰鬪)에서 장량의 계략으로 한신에게 포 위된 초군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들려주는 작전에 성공해 향 수에 젖은 초나라 군사들의 집단 투항을 이끌어냈다. 항우는 이미 전세가 기운 것을 깨닫고 애첩 우희와 함께 자결함으로써 6년간의 치열한 전투는 결국 유방의 승리로 끝을 맺게 된다.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였던 한나라가 거대한 초나라를 물리치고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유방과 항우의 리더십 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유방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알고 전설적인 전술 전략가 장량, 전투의 달인 한신, 군사학의 최고봉 소하 등 자 신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다루는 용인 술이 뛰어난 반면, 항우는 훌륭한 조건과 능력을 갖추고도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유일한 책사였던 범증마저 내친 결과 치욕적인 패배를 맞은 것이다. 유방은 탁월한 리더십 외에도 수백 년을 내다보는 안목 이 있었다. 그는 한나라 통일 후 통치에 걸림돌이 될 인물들 을 과감하고 냉혹하게 제거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를 남기고 처형된 한신을 비롯해 팽월, 경포 등 공신들을 제거한 결과, 한나라 400년 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으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 에서 배운다고 했던가. 조선건국 초기 정도전을 비롯한 개국 공신들을 냉정하게 제거함으로써 성군 세종대왕을 탄생시키 고, 조선왕조 500년의 토대를 구축한 태종 이방원 역시 유방 에게 한 수 배운 것이 아닐까? 장량(張良, 張子房)은 숱한 세월 유방과 함께 지내면서 그 인물됨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통일 후 자신의 임무가 끝났음을 고하고,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그곳이 바로 장가 계(張家界)다. 박수 받고 떠나는 장량의 결단이야말로 장가계 의 경치만큼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75 2024. 09. September Vol. 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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