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9월호

기초」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노동-시민 연대 는 언제 작동하는가』, 『불평등의 세대』가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한민족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험준 한 산지가 대부분이고 충적토 평야라고는 -다른 곳에 비 해- 조금 넓은 들판에 불과한 것들밖에 없는 곳에서(지 형), 장마전선과 태풍이 잊을 만하면 찾아와 물 폭탄을 쏟 아 붓는 곳에서(기후), 유목 약탈족과 해구들이 식량과 자 원을 찾아 급습하는 대륙과 해양 세력의 격전장에서(지정 학), 다른 작물도 아닌 벼농사(주 식량)를 고집하며 한반도 에 주저앉은 씨족들의 후손이다.”(47쪽) 저자는 네 가지 요소, 흙과 물과 식량, 그리고 국가 간 세 력 관계 중에서도 동아시아인의 주식인 쌀로 ‘우리는 누구인 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이른바 ‘쌀 이론rice theory’으 로 “쌀을 재배하는 문화와 시스템”(p.48) 속에서 많은 것을 설명한다. 총 6장으로 구성해, 1장에서는 벼농사 체제의 출현과 재 난의 정치를, 2장은 벼농사 생산체제와 협업 속에 관계 자본 의 탄생을, 3장은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를, 4장은 벼 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을, 5장은 연공제와 공정성 의 문제를, 6장은 벼농사 체제의 극복 방안을 위한 한국형 위 계 구조의 개혁 플랜을 제시한다. 벼농사체제의 연공제, 한국만 집착 “우리는 쌀뿐만 아니라 연공제에 중독되었고, 연공제에 갇 혀 있다. 연차에 따라 동일하고 표준화된 숙련의 상승을 기대하고 그에 따라 보상하는 연공제는, 벼농사 체제의 연령별 위계 구조만 이식한 결과다. 적어도 벼농사 체제는 (개별 소유를 통해) 개인별로 차등화된 노력에 대해 보상 하는 기제를 내부적으로 갖고 있었다. 자연은 인간의 노력에 ‘차별적으로’ 보상한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집착하고 있는 연공제는 이러한 개인적 노력의 차이 조차도 무시하는 불공정한 제도다.”(359-360쪽) 연공제는 “동아시아 마을공동체의 노동조직 원리를 그 대로 가져와 보상 원리로 탈바꿈”(p.287)시킨 것이다. 근속연 수에 따라 “표준화된 임금 테이블”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벼농사 체제의 연령별 위계구조만 이식한 결과” 로 불평등을 만들었고, “인간의 노력에 ‘차별적으로’ 보 상”(p.360)하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불공정한 제도로 자 리 잡았다. 동아시아 기업들의 오늘을 있게 해준 ‘인사전략의 핵심 중추’였지만, 내일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오래된 구닥다 리 마차’가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이제 많은 조직에서 “성과와 능력에 따른 직능 보상체 계”를 연공제와 결합하고 있고, 결국 “개인별 성과와 능력에 따라 보상하는 합리적인 임금제도”(p.356)로 대체되리라는 것이다. 쌀 경작 문화 중심의 제한적 시각은 아쉬운 점 이 책은 한반도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시기부터 현 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새로운 시각으 로 제시한다. 벼농사 체제의 쌀 경작 문화권에서 발전한 한국사회의 위계 구조와 협업 시스템이 어떻게 연공 문화와 불평등 구조 로 형성되었는지, 수많은 자료수집과 데이터 분석에 근거해 진단하고 제시하는 점이 설득력을 더한다. ‘쌀, 재난,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의 상호작용을 긴밀 하게 연결해 독자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점도 흥미롭다. 다만,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벼농사 체제의 쌀 경작 문화로 제한해 바라보는 점은 조금 아쉽다. 우리 사회의 ‘소득 불균형 상태’가 OECD 국가에 비해 높 다 하더라도 ‘불평등’은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좀 더 복합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21세기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인식하게 되는 점은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WRITER 김민숙 인문학 작가 77 2024. 09. September Vol. 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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