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10월호

않은 종합병원의 한 층에 위치해 있었다. 모든 직원은 사복 차림의 여성 수사관들이었는데, 마치 특수요원 같은 노련 함을 풍겼다. 의뢰인이 고소인 조사를 받는 동안 나는 병원 밖 도로 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대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의뢰 인이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전 화를 했다. 부랴부랴 센터로 올라가 보니 의뢰인은 다시 정신적 공황상태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한 채 앉아 있었다. 센터 직원이 다가와 내게 ‘신뢰관계 동석인’ 자격으로 조사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 오후 6시까지 의뢰인 뒤에 앉아 망부석처럼 조사 과정을 지켜보 았다. 의뢰인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조금씩 말문을 열 기 시작했다. 수사관은 사건의 경위 등을 상당히 까다롭게 조사했 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의견을 제시하자 “공정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제지하기도 했다. 정확히 오후 6시에 조사가 종료 되었다. 조사관은 “이 사건을 강간사건으로 인정하여 피의 자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날, 해바라기센터 조사관이 내게 직접 전화를 했 다. 강간 장소인 모텔 이름과 제출한 자료를 다시 정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간 장소”라는 표 현이었는데, 이는 나의 대응 방식에 설득력이 있었다는 의 미다. 그 결과 100회에 이르는 강간사건 중 첫날에 벌어진 모든 사건을 분, 시간 단위로 상세하게 기억하는 데 성공 했다. 이후 나는 택시비 카드 내역서를 발급받아 가해자의 총 강간 횟수를 추정할 수 있었다. 고소장에는 100회 중 단 1회만 받아들여져도 만족한다는 내용을 적어 넣어 수 사관이 수사를 하는 데 있어 부담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이렇게 완성된 추가 고소장에 의사 진단서와 카드 내 역서, 그림으로 복원한 고소 접수증을 증거로 첨부한 후, 지금까지 상담한 내용을 별도의 의견서로 작성해 관할 경 찰서 담당 경찰관을 만나 모두 전달했다. 해바라기센터 고소인 조사에서 공황에 빠진 의뢰인 담당 수사관은 추가 고소장을 전달받은 그날, 바로 사 건을 인근 해바라기 센터로 이첩했다. 다음 날, 해바라기센 터의 수사관이라고 신분을 밝힌 센터의 직원이 내일 의뢰 인과 함께 고소인 조사를 받으로 올 수 있는지 연락을 해 왔다.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소인 조사에 대응하기 위해 진술요약서를 만 들어 의뢰인과 밤늦게까지 예행연습을 하고, 다음 날 함께 해바라기 센터를 방문했다. 센터는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 <그림 1> 의뢰인이 복원해낸 가해자의 고소 접수증 61 2024. 10. October Vol.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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