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 이제는 종중 쪽에서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 고 얼마 후 원고가 또 준비서면을 제출하면서 일말의 합 의 여지도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다시 2차 준비서면 작성에 들어갔다. 다시 한번 원고가 제출한 증거를 살펴보다가 나는 한 사람이 참석자 모두의 서명을 한 것처럼 보이는 종중총회 회의록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겠다고 판단했다. 수십 명이 모여 총회를 하는 것이 어려우니 형식적으로 서류 외양만 꾸미는 것이 보통의 현실이지만, 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증거 서 류의 위조는 안 될 일이다. 지난 1차 준비서면에서는 종중과 종원의 명의신탁 요 건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었으므로, 이번 2차 서면에서 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에 관한 의견을 중점으로 다루기로 했다. 원고 편에서 진술해준 사람들의 경우, 다수가 원고 종중에서 빚을 갚아주는 등 이득을 본 사람이었다. 따라 서 그들의 진술서는 믿을 수 없다고 썼다. 그리고 피고는 젊은 시절 세금을 내지 못해 압류를 당하기도 하는 등 재 산을 지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는 점도 적극 어필했다. 이후 판사님은 이 사건에 대해서 누구 소유로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 지길 바라며 사건을 오래 끌고 갔지만, 서로 협의할 기미 가 보이지 않으니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는지 원고에 게 석명준비명령을 보냈다. 원고 패! 짜릿했던 첫 승리의 기억 나는 2번의 준비서면 제출 후 더 할 말이 없었다. 원 고에게서 몇 번 더 준비서면이 왔으나 의미 있는 주장이 없었기에 반론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4차례의 변론기일이 지나갔고, 판결 선고일이 잡혔다. 참으로 지루한 과정이었다. 변론기일이 4번이나 잡히 다 보니 피고는 충주까지 오가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어 느덧 해를 넘긴 2020년, 마침내 판결선고기일이 되어 법 무사로서 처음 받아보는 판결문이 도착했다. 두근두근…. “원고 패!” 우리의 승리였다. 시골의 작은 땅이라 소가가 작아서 인지 사건을 맡아줄 변호사가 없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 한 동문 후배와의 인연으로 시작한 사건이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의뢰인과 그 아버지께 승소 소식을 알렸다. “법무사님, 고생 많으셨어요. 능력 있는 법무사님을 만나 이렇게 승소하니 정말 기쁩니다. 법무사님을 만나지 못해 땅을 빼앗겼다면 너무 억울할 뻔했어요. 감사합니다. 내 평생 안 잊을게요.” 나는 이 사건을 1심만 맡았다. 원고가 항소하지 않길 바랐는데, 부동산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는 게 요즘의 트 렌드인지 원고가 항소했고, 나는 의뢰인에게 2심은 다른 곳에서 진행하도록 했다. 1심을 승소한 덕분인지 2심을 맡 아줄 변호사는 쉽게 나타났다. 2심도 역시나 의뢰인측이 승소했다. 원고는 상고까지 했으나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아 최종 패소했다. 2심 에서는 원고도 변호사를 선임해 토지소유 경위나 종중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주장한 듯했으나 역시나 제세공과금 을 수십 년간 납부해 온 의뢰인 아버지를 이길 순 없었다. 2심 판결문에 토지 소유관계와 원고 종중의 선조에 대한 기록이 상세히 적힌 덕분에, 이후 증여등기 사건에서 중요한 자료로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인생지사 ‘새옹지 마’인가 보다. WRITER 김선미 법무사(경기중앙회) 13 2024. 11. November Vol.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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