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12월호

데 그중 성 미카엘 교회의 제단화는 화면을 빈틈없이 꽉 채운 구도, 강렬한 색상의 대비 그리고 인물을 통하여 극적인 서사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다른 작품에 비해 탁월하게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대장치처럼 설계된 좁은 마구간을 꽉 채운 인물들은 기적 의 실재에 대한 기쁨과 두려움, 더 나아가 호기심, 놀라움, 경외감 등 복잡 다양한 감정을 표정과 동작을 통해 섬세하게 보여주며 관 객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주요인물인 동방박사들은 각자 ‘멜키오르’, ‘발타사르’, ‘카스파 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역할과 묘사는 시대와 지역마다 서로 다르다. 루벤스의 그림에서는 붉은 옷을 입고 엄숙한 표정으로 손 을 들어 관객에게 아기 예수를 소개하는 듯한 노인이 가장 나이가 많은 ‘멜키오르’다. 그는 황금잔을 들고 있는데, 이는 왕권을 상징한다. 새하얀 옷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로 향로를 바치는 장년의 사내는 ‘카스 파르’다. 그의 향로에는 신성을 상징하는 유향이 담겨있다. 그리고 동방박사 중 가장 젊은 ‘발타사르’는 초록색 옷을 입고 터번을 두 른 흑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아기 예수의 미래를 예견한 듯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 고 있는데, 그가 예수에게 바친 몰약(沒藥)이 선지자로서의 희생 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구유에 서 나와 환한 빛을 발하는 어린 아기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 고 가야 하는 구원자이자 순결한 신성, 그 자체다. 이 어린 예수를 보면 나 역시 그림 속 이국의 방문자들처럼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린 아기에게 우리는 어떤 짐을 지운 것 일까? 선의가 구원을 부르다, 예수의 생애 담은 대작 『메시아』 성탄절이 있는 12월은 연주자들에게 대목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길거리와 광장, 콘서트장에서는 캐럴과 찬송가가 거의 매일 연주된다. 특히 「할렐루야」는 필수 레퍼토리다. 1741년 헨델 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에 나오는 이 노래는 예수의 부 활을 알리며 기뻐하는 노래다(참고로, 오라토리오는 연기 없이 노 래와 가사만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장르다). 독일출신 헨델은 타국인 영국에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작곡 하며 큰 명성을 얻지만, 유행이 바뀌면서 곧 위기를 맞 는다. 그러나 정말로 신이 존재하는 것일까? 파산 후 병마에 시달리던 그는 1741년 자선단체를 도울 목적으 로 작곡한 『메시아』를 발표하며 다시 화려하게 재기한 다. 예수의 태어나기 전 예언부터 탄생 그리고 부활, 최후의 심판까지 성경의 거의 모든 내용을 다루는 노 래이니만큼 연주시간만 두 시간이 넘는다. 당시에는 가장 최대의 편성이라 할 수 있는 네 명의 솔리스트, 합 창 그리고 오케스트라 반주로 편성되는 대작이다. 헨 델은 놀랍게도 이 곡을 24일 만에 완성했다. 빠른 시간 내에 작곡하는 것은 당시 관행에 비추 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자필 악보를 살펴보 면 신앙심이 깊지 않았던 그가 예수가 고난을 받은 부 분에서 눈물을 흘린 자국이 발견되고, 마지막에 “S.D.G.(Soli Deo Gloria - 신에게 영광을)”라는 메모를 남겼으며, 훗날 “신의 가호를 받아 작곡했다”라고 고백 한 것으로 보아, 매우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신실한 마음 을 담아, 혼신을 다해 작곡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남녀 혼성 합창이 포함된 웅장한 대규 모 편성으로 자주 연주되지만, 헨델 시절의 고악기로 편 성된 오케스트레이션에 보이소프라노 합창단으로 편성 된 연주를 추천하고 싶다. 압도적인 화려함은 없지만 오 히려 꾸밈없는 순수함이, 성경이 전달하는 구원의 메시 지에 더욱 어울린달까? 마치 예수의 탄생처럼 말이다. 종교를 떠나, 모든 공휴일 중 어째서 성탄절이 이 렇게 사랑받는 날인지는 예술작품에서 표현된 예수의 삶을 따라가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태 어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 그의 가르침처럼 성탄 절은 날씨는 춥지만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제일 충만한 날이다. 이러한 인류애가 우리가 지향하고 후세에 남겨주 어야 할 정신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꾸준 히 다양한 장르에서 예수의 일생이 다루어지고 우리가 감동받는 이유다. WRITER 최희은 미술·음악 분야 작가 · 번역가 79 2024. 12. December Vol. 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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