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에 취하면 소설이 되고 추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출근했습니다.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법무사님들이 참가하는 열띤 단톡방을 기웃거립니다. 미래등기와 보수표, AI에 대한 것 등으로 뜨겁게 끓고 넘칩니다. 열정으로 가득한 진취적인 토론과 최신 정보들을 보면서 생 소하고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게으름과 우둔함 탓이지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노 년에 책임을 넘겨봅니다. 1977년, 법원과 인연을 맺어 오랜 기간을 지낸 후 같은 울타리에서 2024년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 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짙은 갈색으로 물든 나뭇잎 들이 눈처럼 내리는 날은 빛바랜 추억을 커피 향에 섞어보기도 합니다. 『법무사』지 11월호를 뒤적여 봅니다. 통권 689 호, 생활법률전문가 127년이랍니다. 대한제국 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고, 1897년 「대서 소세칙」이 제정되어 법무사의 원조인 대서인제도 가 시작되었으니 127년의 해와 달을 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사법서사법」이 사용되 었으나, 1945년 해방 후 1948년까지 의용되었습니 다. 1954년에 「사법서사법」이, 1990년에는 「법무사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우연히 경성지방법원의 1945년도 법인등기신 청서철을 본 일이 있습니다. 등기와 등초본신청서 가 함께 세로로 묶여있으며, 1년간 접수된 신청서 가 모두 91건이었습니다. 해방된 8.15. 이전의 등기 신청서는 일본어에 조선총독부의 확인서가, 이후 는 한자와 한글이고 미군정청의 영문 서면이 붙어 있었습니다. 용지는 반으로 접는, 얇고 질긴 종이로 접히는 부분에 “경성사법서사조합”이라 인쇄되어 있어 조합이 제작 공급한 것 같습니다. 법 제정과 개정 때의 아픔과 기쁨, 낡은 신청 서에서 해방 전후 긴장과 감동의 떨림이 느껴집니 다. 127년! 4만 6천 번도 넘게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동안 좋고 나쁜 일들을 맞으면서, 오늘처럼 유능하 고 훌륭한 법무사와 협회가 되도록 수고하신 분들 께 박수를 보냅니다. 하동 남쪽 바다에 방아섬이 있습니다. 단독 소유의 작은 섬으로 2~3일 숙식을 제공합니다. 섬 을 산책하고 바다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빈 둥거리다가 주인이 만든 정갈하고 보약 같은 건강 식을 먹고 마음껏 잠자는 것이 일정의 전부입니다. 해가 외로운 섬 마루 뒤로 숨고, 보름 달빛이 하늘과 산과 바다로 내려앉습니다. 전설처럼 바다 안개가 피어오르면, 멀리 삼천포와 남해의 불빛은 달빛에 잠기고 별빛과 어우러져 안개 속으로 숨어 듭니다. 갯바위에 앉아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햇 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문구를 떠올려 봅니다. 이병주 님이 소 설 「산하」에서 소환한 구절입니다. 역사와 신화가 별빛에 취하면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 Letter ; Editorial Board’s WRITER 권중화 법무사(서울중앙회) · 본지 편집위원 90 편집위원회 레터 동정·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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