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월호

슬기로운 문화생활 법무사와 차 한 잔 • 가회동 한옥마을 설맞이는 이방인들의 잰 발걸음 소리로 시작된다. 봄, 여름, 가을 동안 삼백여 평 뜨락을 채우는 소리 와 때깔 변화는 새싹의 트임이나 잎새의 조락(凋落) 외엔 찾을 수 없다. 뜨락에 심어둔 화초나 수목의 자태가 남산 공원이나 에버랜드의 그것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데 이 를 찾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겨울이 주는 한옥마을 풍경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언제나처럼 마당의 잡초를 뽑고 나무 곁가지를 자르고 나면 매서운 추위가 담장을 넘어온다. 서울 한복판에서 유일하게 살 에는 북풍과 독을 깨 뜨리는 얼음과 맞닥치는 곳. 일흔 살을 넘긴 내가 나고 자 란 집이지만 지은 연도나 이사 온 햇수를 더듬기란 쉽지 않다. 다만 살아계셨다면 백 세가 넘으셨을 선친이 여주 인근의 문전옥답을 정리한 돈으로 이곳 땅을 사고 한옥 단편소설 반도삼절 (半島三節) 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선친은 풍수지리상 ‘터’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는 이유로, 이곳 삼백여 평 대지를 매입하고, 그 위에 본채, 별채, 행랑채에 칩거 움막까지 갖춘 한옥을 지은 것이다. 이후 아파트 붐과 함께 강남으로 이삿짐 행렬이 이 어졌다. 어머니는 당신의 외동아들(=나) 학업을 위해서라 도 행렬에 동참하길 원했으나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땅과 집을 잘 주선해 준다는 사람이 그렇게도 안목 이 없우!” 압구정 아파트 한 채 값이 가회동 자택 가액의 절반 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에게 준 타박이었다. “그렇게 변통 없는 사람이 무슨 사법서사, 때려치우 세요.” 압구정이 가회동을 2배쯤 넘어섰을 땐 타박이 이런 독설로 바뀌어 버렸다. 독설의 영향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 무렵 아버지는 업(業)을 접고 텃밭 농부가 되었다. 선친은 어머니가 한 타박에 대한 대처(對處)를 자 식인 나에게 미뤘다. 민병영 법무사(대구경북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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