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부동산 관리에는 거의 손방 수준이었 다. 한의학을 전공하고 베이징(北京)의 모 대학 교수로 재 직을 하였으니. 자연, 고택은 한약재 실험의 공간이자 다 향을 음미할 휴식처였다. 어설픈 한복차림 코쟁이들이 솟을대문 앞에서 셔터 를 누른다. 일부는 민박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찌든 목장 갑으로 이마와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을 걷어낸 일 년 노 고가, 제대로 보상을 받는 한옥의 음력설이 코앞에 닥쳤 다는 암시다. 북악을 넘은 맹추위가 옷자락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잠옷 바람으로 반지하 차고의 자물쇠를 점검하는 일조 차 엄두를 내기 어려운 추위다. 관광객 발소리도 최고조 에 이르렀다. • “어머님, 저희들 왔습니다. 아버님도 잘 계시지요?” 분명 한 치 오차 없는 표준 어투인데 ‘표준’은 문장 에 그쳤을 뿐, 억양(intonation)은 이에 한참 못 미쳤다. 그러자니 “오마님, 저거들 왔습네다. 아바님도 잘 계셨습 네까?”라는 아들의 통역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예의 바 르고 싹싹하기로 소문난 만큼이나 성격이 급한 의주 미 느리(며느리)가 제일 먼저 솟을대문을 들어섰다. 막내인 의주 며느리는 친정이 신의주다. 내가 재직 했던 대학 출신이니 나에겐 제자가 되고 막내아들과는 동기동창이다. 현지인들 중에서도 최상류 집안 자제들이나 입학이 가능하고, 외국 유학생도 가려서 뽑을 만큼 위세가 등등 한 학풍이라 난 어렵잖게 둘 사이 교제를 허락했다. 허락 을 지나 중매를 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그처럼 두 사람 인연에 적극적이었던 것에는 당시 국제정세의 도움이 컸다. 동양 정치학을 전공한 동 료 교수의 전언(傳言)에 따르면, 조선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북남이 합작 합세하면 자국 동서변방이 위태롭지 않을까 걱정이란 것이다. 79 2025. 01. January Vol. 691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