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문화생활 법무사와 차 한 잔 “1935년 개교하여, 2025년 3월 1일 폐교 확정. ▵▵ 초등학교장 ○○○” 내가 모교에 도착한 20일, 마지막 졸업식 날짜에 맞 춰 사전 제작된 폐교비(閉校碑)가 텅 비다시피 한 교무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구십여 성상(星霜)을 지켜 온 역사의 팻말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초등학교 아닌 국 민학교를, 그것도 오지에서 졸업한 이들이 귀향했을 때 맞닥뜨린 이 쓸쓸한 현실. 하늘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얼룩소 등을 닮 은 교문이 닫힐 날의 장면을 떠올려 보자. 3월 초쯤이면 이곳의 추위가 상당히 매운 날씨일 터. 폐교비를 어루만지던 교장 선생님은 손수건으로 이 미 추위로 루돌프 코가 되어버린 코를 연신 훔칠 것이고, 앙상한 골근만을 가진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들마루에 선 몇몇 선생님들이 연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둥지 와 새끼들의 추억담을 나눌 터. 객(客)이 되어버린 새끼 들은 뽕나무 오디 열듯 철 대문에 조롱조롱 매달려 이역 (異域)을 들여다볼 ‘터’이고. 폐교비가 세워지자마자 그나마 인적도 끊겨 유령의 집이 된 교정. 횟가루가 벗겨져 맨살이 드러난 시멘트 건 단편소설 마지막 졸업식 물은 자외선에 들볶여 윤기를 잃어버렸고, 빗물에 쓸려 골이 파인 운동장에는 어느새 잡초들이 웃자라 있다. 고 무줄놀이, 공기놀이, 사금파리 땅빼앗기 하던 쥐발들이 사라진 플라타너스 그늘엔 폐유를 뒤집어쓴 경운기 잔해 들만 널려있다. 교무실을 나와 베니어판으로 가려놓은 옆 창작실 창문 틈으로 안을 훔쳐보았다. 빛바랜 아이 하나, 둘, 셋 이 그네를 타고, 시 작품도 곁들여 있다. 그네 타는 그림 은 재학시절 영교가 그린 것이고, 곁들인 시는 그로부터 오십 년 후 내가 헌사한 것이다. 선생님은 칠판 앞에 제비 새끼들을 앉혔습니다. 가갸거겨는 조금 딱딱하고 이일은 이 이이는 사, 구구 달구똥은 제법 부드럽네 선생님은 안단다 너거들 노란 주둥이만 봐도 누가 맞고 틀리는지 산딸기 따다 지각한 점이는 딸기 맛 대신 회초리 맛 잔대 도라지 캐느라 결석한 동이는 통시 청소 일주일 나냐너녀 다댜도됴는 술취한 아버지의 혀놀림 칠칠이 뺑끼칠 팔팔이 곰배팔은 약수를 마시듯 시원시원하게 선생님은 안단다 너거들 주둥이만 봐도 누가 밀 서리 했는지 어느 날 제비 새끼와 선생님이 칠판을 떠났습니다 민병영 법무사(대구경북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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