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2월호

그날부터 달콤한 밀어(密語)들이 사라져 버린 둥지엔 공허만이 남았습니다 공허만이 남았습니다 모교의 졸업식은 이월 말을 일주일가량 앞둔 이십 일에 열린다고 했다. 졸업생 전체에게 문자를 보냈고 각 기수를 대표하여 반장과 부반장에게는 따로 서신 연락을 줬다고 했다. 졸업식 당일 나와 영교도 몇몇 기수 대표들과 함께 식장 단상 자리를 배정 받았다. 스물 남짓한 좌석의 인맥 을 가늠해 보면 교직원 반, 동창회원 반쯤이 될 것이다. 단상석은 그렇다 치고. 금년 졸업생이 머물러야 할 자릴 훔쳐보았다. 검정 망토 차림에 사각 모자를 쓴 단발 머리 아이 하나! 재학생석은 더욱 가관이다. 아예 사람의 흔적조차 없다. 그 대신 학부모인 듯한 중늙은이 대여섯 이 웅크리고 있다. 국민의례, 장학사님 격려사와 교장 선생님 훈화, 졸 업장 수여, 전체 졸업생을 대표하여 내가 축사이자 답사 를 하게 된 것은 더없는 영광이었다. 영교가 귀띔했다. 선·후배를 세로가로 질러 너에게 축사 기회를 준 것은 그 잘나빠진 ‘글쟁이’였기 때문이라고. “반갑습니다, 제15기 어린이회장 출신 문 아무갭니다.” 지금껏 시골 문화를 걸러내는 허파요, 앎을 잉태하 던 자궁은 오늘부터 어린 것들에게 ‘허무’를 가르치는 역 사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제비 새끼들의 귀청 따가운 책 읽는 소리와 가을 운동회의 달음박질치는 소리도, 쓰르 라미 울음소리와 신작로를 지나는 자동차 굉음으로 바 뀌었습니다. 가볍게 걸어 다니던 통학길이 스쿨버스 타고 한참을 달려야 하는 등하굣길로 바뀐 이곳. 이런 농촌의 현실에 서 떠나려고만 하고 돌아오지 않으려는 농심(農心)의 당 위성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좁은 국토를 넓게 쓰기 위해서는, 식량안보의 초석 을 다지기 위해서는, 농민의 사람다운 삶이 보장받기 위 해서는 초미니 학교를 더 세워야 할 판에, 이들은 가진 것 도 빼앗기며 살고 있습니다. 지역문화의 산실인 시골 초 등학교 폐교 문제가 단순한 경제 논리뿐만이 아닌 복지 정책 차원에서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시골 초등학교는 그 지역의 도서관이요, 박물관이 며, 이 모든 것을 아우른 유일무이의 문화원이니까요. 이 를 폐쇄한다는 것은 지역민들에게 앎의 자양분을 끊어 73 2025. 02. February Vol.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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