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2월호

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손실도 예상해 볼 수 있습니 다. 생명공학이 중요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지금 우리는 많은 수의 곤충학자 파브르나 식물학자 린네가 필요합니 다. 그런데 파브르나 린네를 아파트촌에서 기를 수는 없 지 않은가요! 그런 의미에서 시골 초등학교는 국제 경쟁 력을 갖춘 자연실험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실험 실이 이제 메기들이 추억의 술잔이나 기울이는 쉼터로 자리바꿈하고 있습니다. “아, 옛날의 금잔디 동산이여!” 미련 곰탱이로 악명이 자자했던 나도 ‘동산이여!’에 서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식장 전부가, 식객 전부가 울음바다를 이뤘다. 동기회 회식 장소는 으레 ‘승’이 운영하는 백산흑염 소 식당이다. 백산이라는 상호는 주인인 승 녀석이 태백 산에서 방목한 흑염소만을 도축하여 식재료로 쓴다며 고 집한 이름이지만, ‘수’의 증언에 의하면 이는 말짱 ‘꽁’이 라 했다. 수는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삼십 년 이상을 태백 산에 은거 중이다. 그런데 지금껏 자신의 은거지 주위를 맴도는 ‘검은 털 달린 염소’를 한 마리도 본 적이 없었다 는 것이다. 그가 굳이 흑염소 아닌 ‘검은 털 달린 염소’라는 표 현을 쓰는 데는 심상한 과거가 있어서다. 흰 털을 검정으 로 염색하여 내다 팔았던 거간꾼이 형사 처벌을 받았다 는 뉴스를 접하고 난 뒤부터, 열 길 물속 사정은 꿰뚫어 도 한 치 장사꾼 속내는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믿음이 생 겼다는 것이다. 동기회 회식이 있는 날 백산식당에는 항상 두 명의 알바가 등장한다. 산딸기 따다가 지각했던 ‘점이’는 안주 심부름, 통시 청소 벌칙을 받았던 ‘동이’는 술심부름 하 는 알바꾼이 된다. 그 덕분에 이날만큼은 승이도 주방 일 에서 해방이 된다. 그 대신 그는 주모 노릇을 해야 한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주전자를 조종하는 주모 역할쯤 이야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미미의 ‘먼 데서 오신 손님’이라는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하여, 오른손에 주전 자, 왼손에 대꼬바리(곰방대)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 서 술판을 오가는 퍼포먼스는 쉬이 따라 할 수 없다. 잔(盞) 털 시각을 늦추려고 쓰잘 데 없는 잡담을 나 누는 동기 놈을 발견하면 우선 대꼬바리로 어깨를 툭툭 쳐서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러곤 제 턱을 주억거려 어서 마실 것을 권고한다. 그 권고가 먹혀들지 않으면 이번에 는 피우던 대꼬바리를 뒤집어서 술잔에 재(灰)를 터는 경 고를 보낸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마침내 “야, 이 빌어먹을 놈 나가 뒈져라!”라고 일갈하며 대꼬바리로 동기 놈 대갈통 을 냅다 지르곤 했다. 그러나 어떤 동기 놈도 그의 퍼포먼 스에 이의를 달지 못했다. 패찰에 가로놓은 막대기 하나, 둘, 셋. 막대기 하나는 부반장, 둘은 반장, 셋은 전교어린이 회장. 나는 내리 삼 년을 막대기 두 개가 박힌 패찰을 달았 고, 졸업반이 되어선 세 개짜리 패찰까지 달아봤다. 그러 나 영교는 육 년 내내 막대기 하나 눕힌 패찰만 달았다. “이건 명백한 성적 차별이야.” 산수 셈에서 뜀박질에 이르기까지 머슴애 못지않은 자질을 가졌노라 자부하는 그녀였다. 그런 자신이 막대기 하나에서 더 이상 승진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계집애라는 성적 카테고리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여자 동기 중 유일하게 대학 진학을 했던 그녀가 한 사코 서양미술을 전공한 것이나 프랑스 유학까지 한 것 은, 예능 자질도 자질이지만 이런 남녀유별이라는 고루한 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환쟁이와 글쟁이가 조합하면 어떤 제품을 생산할까?’ 그러나 이런 동기들의 기대는 항상 무위로 끝나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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